미즈넷에 가지 않아도, 82쿡에 가지 않아도 슬금슬금 들려온다. 결혼한 친구들의 파란만장한 ‘시월드’ 입성 스토리가. 예비 시어머니가 초대면에 뚱뚱하다며 지적하자 (그런 집안에 절대 시집가지 말라며 파르르 떠는 나를 무시하고) 독하게 다이어트를 해 평생 가장 예쁜 모습으로 웨딩드레스를 입었던 친구나, 똑똑한 딸에게 기대가 컸던 부모님 반대에도 수년을 버텨 연애결혼에 성공한 친구나, 끝없는 주말 맞선 출석에 지친 끝에 비교적 무난하고 안정된 상대와 중매결혼을 한 친구나 입을 모아 하는 충고를 요약하면 딱 한마디. “결혼은 현실이야.” 그리고 덧붙이길, “너 진짜 걱정된다. 정신 차려”.

그러나 먼 옛날 과년(瓜年)의 기준이었던 나이 열여섯… 의 곱절 이상 나이를 먹었음에도 긴장감이나 현실감각이라곤 없이 살아온, 로맨스포비아인 동시에 지독한 로맨티스트라는 딜레마를 가진 내가 진짜 정신을 번쩍 차리게 된 것은 요즘 JTBC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를 보면서다. 제목 그대로 스물여덟 동갑내기 커플 혜윤(정소민)과 정훈(성준)의 결혼 진행 과정을 따라가는, 언뜻 보기엔 너무나 평범해서 네이트판 인기 글도 못될 것 같은 설정의 드라마지만 21세기 대한민국 결혼시장 시스템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꿰고 있는 대본은 상견례, 혼수와 예단 논의, 예식장 결정 등 ‘남들 다 하는’ 결혼의 단계마다 발생하는 수많은 갈등과 딜레마를 쫀쫀하게 구현한다.

지금 TV에서 방영되는 드라마의 9할 이상이 남녀의 사랑을 그리고 그 종착지로 결혼을 선택함에도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에서의 결혼이 흥미로운 시각으로 다뤄지는 것은 근래 드물게 현실적인 욕망을 드러내는 여성 캐릭터들 덕분이다. 경제력 없던 남편의 사후에 시장통 화장품 가게로 근근이 가계를 꾸려온 들자(이미숙)는 입버릇처럼 “내 딸들은 남자 잘 만나서 팔자 고치게 할 것”이라 강조하고 교사인 둘째딸 혜윤의 결혼에 기대를 걸지만, 정작 혜윤은 “선이란 건 내 조건, 선남 조건 대차대조표”이고 “있는 집에선 교사 쳐주지 않는”다며 자신의 ‘신붓감 등급’을 냉정히 평가한다. 들자에게 예비사위 정훈은 연봉 낮은 중소기업 직원일 뿐이지만, 유복한 가정에서 고생 모르고 자라 순하고 여유로운 성품을 지닌 정훈을 자신에게 맞는 배우자로 결정한 혜윤은 “지금 결혼하자고 하지 않는 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인 것 같으니 헤어지자”는 초강수를 두어 프러포즈를 이끌어낼 만큼 영악하기도 하다.

그래서 달콤한 키스를 나누다가도 시어머니 눈높이에 맞춰야 하는 예단을 걱정하고, 웨딩드레스 입을 때 팔 라인이 예뻐야 한다며 다이어트에 점 빼는 시술까지 받으러 다니는 혜윤의 상황은 단순한 리얼리티를 넘어 결혼이라는 화려해 보이는 이벤트의 고단한 이면을 드러낸다. 정훈이 “결혼해서 아내가 차려준 밥상 받는 게 남자들 로망”이라며 미리부터 신혼의 단꿈에 빠져 있을 때 혜윤이 가사분담 문제를 제기하는 것 또한 결혼을 앞둔 남녀의 흔한 동상이몽이자 수많은 부부의 갈등 포인트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는 결혼이 사랑의 연장선에 있는 선택이지만 그 과정에서는 어쩔 수 없이 타인의 기준으로 나를 재단하고, 부모를 포함해 나를 둘러싼 환경과 그동안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해 아쉬워하거나 부정하고 싶은 순간이 오기도 한다는 불편한 진실의 예습용 텍스트인 셈이다. 그것도 썩 잘 만들어진. 즉 정훈의 말을 빌려 요약하면 “사랑하면 그냥 살면 되는 건 줄 알았는데, 그냥 사는 게 어렵다”인데, 본방 사수로 선행학습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이 시점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문제를 한마디로 하면 이렇다. 이제 머리로는 결혼이란 게 정말 어렵다는 걸 알았는데, 막상 내가 부딪히려니 더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