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킴의 인기가 나날이 치솟고 있다. 데미안 라이스의 노래를 불렀던 예선전 때부터 그를 점찍었던 사람으로서 지금의 인기가 반갑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주목을 끌 만한 폭발적인 가창력은 없지만, 목소리가 좋아서 어떤 노래든 잘 소화해내는 것 같다. 결승전을 앞둔(이라고 쓰지만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3강만 확정된 상태다. 당연히 결승으로 가겠지!) 지금까지의 베스트는 <서울의 달>이었다. <서울의 달>이 이렇게 달착지근한 노래였던가, 새삼 감탄했다.
비슷한 시기에 <서울의 달>을 부른 또 한명의 가수가 있다. <황금어장-라디오스타>에 출연해 군입대를 앞둔 ‘마이티 마우스’의 ‘상추’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해야 한다는 본분을 망각하고 오로지 김건모와 함께 작업하고 싶다는 절실한 마음으로 <서울의 달>을 부른 ‘데프콘’이다. 서울에서의 힘든 시절 얘기를 한참 하다가 <서울의 달>을 부르는데 음정은 어찌나 오락가락이고, 돼지 멱 따는 소리는 얼마나 처절하던지, 아, 이런 것도 <서울의 달>의 또 다른 맛이구나 싶어 마음 한켠이 찡했다. 로이킴의 노래가 와인을 마시며 바라본 서울의 달이라면 데프콘의 노래는 소주를 두병 정도 마시고 바라본 서울의 달이랄까. 원곡을 부른 김건모는 딱 중간 정도였던 것 같고…. 서울의 달 아래에서는 참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었다.
‘서울의 달’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노래보다도 김운경의 드라마가 먼저 생각난다. 이른바 ‘본방사수’를 하면서 본 첫 드라마가 <서울의 달>이었고, 홍식이와 춘섭이의 인생 드라마에 깊이 감화돼 드라마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최근에 케이블 텔레비전에서 다시 봤는데, 역시 재미있더라). 아무리 우물을 파도 재능이 드러나지 않아 드라마작가가 되는 길은 포기했지만, 드라마를 쓰는 게 얼마나 힘든 작업인지는 절실하게 깨달았다. 소설에서도 인물이 중요하지만 드라마는 인물로 시작해서 인물로 끝나는 장르다. 주인공이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그리지 못하면 드라마는 실패로 끝날 확률이 높다. 드라마를 쓰기 위해서는 인물을 이해해야 하고, 그 인물에 공감해야 하고, 그 인물을 살아야 한다. 아집과 오기와 패기와 객기가 이상한 비율로 혼합믹스돼 단단한 돌덩이 같았던 이십대의 내가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건 애초에 불가능했을 것이다. 지금도 좋은 드라마를 보고 나면 좋은 사람을 만난 것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이야기의 본질은, 어쩌면 사람에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드라마를 보고 소설을 읽고 연극을 보고 영화를 보고 수많은 이야기들을 찾아 헤매는 이유는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다. 자신을 이해해야 다른 사람도 이해할 수 있다. 사람들은 다 거울인 셈이다. 서울의 달 아래에서 각자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사람들은 ‘텅 빈 가슴 안고 살아가지만’ 때로 서로의 거울이 되어, 함께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