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주 전 이 칼럼에서 1990년대와 2000년대 가요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를 아주 짧게 얘기하고 지나갔는데, 그러면 안되는 거였다. 나는 이 노래에 대해 할 말이 훨씬 많다(아무렴, 한회 분량은 충분히 뽑고도 남을 노래지).
김현식의 6집 앨범이 발매된 것은 1991년 1월이었고, 1991년 1월에 나는 정상적인 인간이 아니었다. 휴학한 상태였고, 매일 술에 절어 있었고, 심지어 입대를 앞두고 있었다. 정상인 게 오히려 비정상인 시기였다. 그 무렵의 나는 겉멋이 잔뜩 들어서 (겉이라도 멋있으면 좋았겠지만 그건 또 아니었던 것 같고) 머리를 어깨까지 기르고 트렌치코트를 입은 채 거리를 활보했었다. 누구나 인생에 한번쯤 그런 시기가 있는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무슨 정신으로 그러고 다녔는지 이해할 수 없는 시기.
폼 잡고 다니던 시절의 배경음악은 당연히 김현식이었다. 일단, 반항 좀 하려면 김현식을 들어야 했고, 폼 좀 잡으려면 김현식을 알아야 했다. 1990년 11월1일,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한동안 멍했다. 잘 알던 선배가 떠난 기분이었다. 그해 겨울, 많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내 사랑 내 곁에>를 수없이 들으며 따라 불렀다. 하루에 한번은 꼭 들었던 것 같다. 여름이 되고, 노래에 조금 질렸을 때쯤 긴 머리를 자르고 입대하게 됐다. 그렇게 김현식과 함께했던 한 시절이 저물었다, 고 생각했는데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훈련소에 갔다온 사람들은 알겠지만 고된 훈련 사이사이 꿀맛 같은 10분 휴식의 시간이 있다. 그 시간은 훈련병들의 장기자랑 시간으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내 차례가 됐을 때 아무 생각 없이 <내 사랑 내 곁에>를 불렀다. 순간 연병장에 정적이 감돌았다. 노래를 지나치게 잘 불러서라기보다 (뭐, 제가 좀 부르는 편이기도 하고요) 노래의 멜로디와 가사가 훈련병들의 가슴에 콕콕 박혔던 것이다. 그날부터 쉬는 시간만 되면 나는 사람들 앞에 불려나갔다. 조교가 ‘여기 노래 누가 잘하냐?’고 물으면 훈련병들이 모두 나를 지목했고 (자기들이 편하려고 나를!) 나는 자동으로 일어나서 그 쓸쓸한 노래를 아무런 반주 없이 몇번이고 불렀다.
훈련소에서만 그랬으면 괜찮았을 텐데, 부대에 배치된 뒤에도 (함께했던 훈련병이 고자질하는 바람에) 또 노래를 부르게 됐다. 예, 이병, 김중혁, 노래 일발 장전. ‘나의 모든 사랑이 떠나가는 날이…’ 자동으로 노래가 나왔다. 부대에 배치된 것이 10월이었으므로 나는 꼬박 1년 동안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를 수백번 불렀다. 김현식보다 더 많이 불렀다. 11월이 되면 가끔씩 이 노래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온다. 김현식과 군 시절이 함께 떠오른다. 나는 김현식이 부른 버전보다 김중혁이 부른 버전에 훨씬 익숙하기 때문에 노래를 듣다 깜짝 놀란다. 정말 훌륭한 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