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프랑스의 엑상 프로방스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라고 쓰면 엄청나게 멋있어 보일 거라고 (서울을 떠나기 전에는) 생각했는데, 솔직히 지금은 한국에 있는 사람들이 몹시 부럽다. 아, 공항에 들어가기 전에 떡볶이를 먹었어야 했다. 아니, 공항에 가서라도 어떻게든 떡볶이를 찾았어야 했다. 낯선 나라의 생전 처음 보는 음식을 잘도 먹는다고, 한국 음식 없어도 몇달은 거뜬하게 버틸 수 있다고 자랑을 많이 했었는데, 아, 이렇게 무너지고 마는가.
하염없이 무너진 채로 엑상 프로방스에서 리옹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사람들과 떡볶이 얘기를 했다. 한 사람은 ‘신당동’이라는 지명과 ‘어묵’이라는 단어에 ‘멘붕’을 일으키고는 입에 거품을 물었다. 그리고 어제 저녁, 문제의 음식을 먹고야 말았다. 리옹의 유명한 식당에 가서 현지인이 추천해준 음식을 주문했다. 이름은 참 예쁘다. 앙두이에트(Andouillette). 영어로 된 설명에는 돼지, 소시지, 어쩌고저쩌고 설명이 돼 있었는데, 추천이니까 여기서 먹어보지 않으면 언제 또 먹어보겠나 싶은 몹쓸 여행자의 심보가 발동하여 일단 주문을 하고야 말았다. 쉽게 설명하자면 겨자소스에 버무린 (순대 비슷한) 돼지곱창이었다. 맛과 식감은 좋았다. 돼지고기 냄새가 좀 나긴 하지만 그럭저럭 견딜 만했고, 쫀득쫀득한 결기가 진하게 느껴지는 살들의 탄력은 탄성을 자아낼 만했다. 맛은 좋지만, 한계에 이르렀다.
프랑스에 오고 난 뒤, 계속 빵-생선-쇠고기-돼지고기-빵- 어쨌거나 고기- 또, 고기 등의 음식을 먹다가 ‘내가 진짜 고기의 진득한 맛이야’라고 소리를 지르는 앙두이에트를 만나니 두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그래, 너 고기 짱 먹어라!)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더라도 쉼표가 없으면 안된다. 쉬지 않으면, 쉽게 질리고 만다. 최고의 문장 100개가 모조리 연결되어 있으면 그 어떤 문장도 빛이 나지 않는다. 쉬어가는 문장, 쓸데없는 문장 같은 문장이 조금씩 섞여 있어야 좋은 문장이 더 빛나게 마련이다. 빵과 고기의 대혼란 속에서 그나마 버틸 수 있는 건 디저트와 커피 덕분이다. 디저트와 커피로 쉬어갈 수 있다. 레몬 소르베(셔벗)를 먹고 나면, 온몸이 시큼달큼하여 고기를 먹기 전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 커피를 마시고 나면 혀와 미각이 ‘리셋’된다.
유학생 한명이 요즘 자주 듣는 노래라면서 이어폰을 건네주었다(기보다 내가 칼럼을 써야 한다며 노래 한곡 추천해달라고 했다). 아, 거기에서는 (하필이면) ‘현아’의 <아이스크림>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현아를 특별히 좋아하지 않았는데, 여기서 들으니 목소리가 무척 매력적이었다. 떡볶이처럼 ‘칼칼한 목소리’라고 해야 하나. (아니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마음 같아서는 DJ DOC의 <신당동 허리케인 박>도 이어서 들어보고 싶지만, 여긴 한국이 아니라서 인터넷 사정도 그리 좋지 못하다. 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