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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즈 업] “다음엔 영화제 관객과 스탭들의 이야기를 만들어볼까”
이영진 사진 백종헌 2012-11-06

< JURY > 연출한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

김동호(75) 부산국제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이 11월4일 제10회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에서 GV를 진행한다. 모더레이터가 아닌 ‘감독’으로서 관객과 만나는 자리다. 2년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직을 내놓고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그의 활동력은 여전히 왕성하다. 단국대학교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장을 맡고 있는 그는 올해 여름 24분짜리 단편영화 <JURY>도 찍었다. 11월1일부터 열린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의 개막작이기도 한 <JURY>는 영화계 어르신에 대한 예우 차원의 이벤트 결과물이 아니다. 영화제 심사위원들이 난투극을 벌이는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을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대화와 소통의 가능성을 묻는 진지한 질문도 곁들인 단편이다. “이러다 개망신당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에 밤잠을 설치기도 한다는, ‘최고령 신인감독’ 김동호 감독을 영화제 개막 전날 만났다.

-2년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직을 내놓으신 뒤 영화를 찍고 싶다고 하셨을 때 농담 혹은 바람이라고만 넘겨짚었습니다. =1996년부터 칸영화제를 매년 다니면서 알게 됐어요. 영화제의 꽃은 배우가 아니고 감독이구나. 22년 동안 영화계에 몸담고 있었는데 위원장을 그만두면 영화를 한두편은 만들어야지 않겠는가 그랬어요. 내가 감독이면 저런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시나리오를 어떻게 써야 영화가 될까, 해외 나가서 영화를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시나리오 초고는 장률 감독이 썼다고 들었습니다. =장률 감독이 2년 전에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심사위원장이었어요. 그런데 심사를 하면서 심사위원들과 많이 다퉜대요. 심사가 끝난 뒤 심사 과정을 영화로 만들면 어떻겠는가, 본인이 시나리오를 쓸 테니 나한테 연출을 맡기면 어떻겠는가, 영화제쪽에 그렇게 제안을 했던 것 같아요. 제 입장에서도 해외영화제 가서 심사한 경험이나 에피소드를 많이 알고 있으니까 그런 것들을 반영하면 되겠구나 싶었고.

-가장 먼저 떠올랐던 에피소드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1996년 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끝나고 그다음 해 1월에 로테르담국제영화제 심사위원장으로 갔어요.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과 왕샤오솨이의 <극도한랭>, 그리고 또 한편을 수상작으로 선정했죠. 심사위원이었던 샹탈 애커만 감독에게 <극도한랭>을 선정한 이유를 써달라고 부탁할 때만 해도 심사가 금방 끝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 되게 까다로운 감독이 못 쓰겠다는 거예요. 중국 정부의 통제와 탄압에도 불구하고 만들어진 독립영화이니까 상을 줘야 한다, 뭐 그런 주최쪽의 분위기를 감안해서 자신은 표를 던졌지만 영화로만 놓고 보면 아니라는 거죠. 샹탈 애커만의 의견에 다른 심사위원 한명도 동의하는 상황이 벌어졌고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어요. 그 뒤로 다섯 시간 넘는 토론이 이어졌죠. 야마가타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갔을 때 김동원 감독이 들려준 이야기도 생각나요. 가와세 나오미 감독하고 김동원 감독하고 두 사람이 심사를 맡았는데, 밤새 싸웠대요. 그런데도 결론이 안 나서 결국 김동원 감독이 양보를 했다고 해요. 당시 가와세 나오미 감독이 만삭이었는데 이러다가 애가 잘못되는 게 아닌가 싶어서 물러섰다고 그랬어요. (웃음) 영화제 심사하다 보면 싸우는 경우가 정말 많아요.

-극중 캐릭터들도 염두에 둔 실제 모델이 있는지요. =영어 못하는 심사위원으로 나오는 토미야마와 같은 상황을 저도 많이 겪었어요. 해외영화제 심사는 대개 영어로 진행하는데 논리적으로 이 영화가 좋다고 말하고 싶은데도 영어가 부족하니까 강하게 주장을 못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어요. 영어가 스트레스죠. (웃음)

-윤성호 감독도 각색에 참여했는데요. 장률 감독과 윤성호 감독의 스타일은 물과 기름처럼 서로 다르지 않나요. =영화는, 장률 감독이 쓴 시나리오와 많이 달라요. 장률 감독 것은 30분 분량으로 좀 길었는데 영화제 심사과정만이 아니라 다른 여러 갈래 이야기들이 많이 들어 있어요. 영화제쪽과 회의를 해서 결국 애초 컨셉대로 영화제 심사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겠다고 결정을 했어요. 그래서 15분 길이로 내가 트리트먼트를 썼고, 그걸 갖고서 윤성호 감독이 시나리오를 다시 썼어요.

-극장 안과 밖 혹은 꿈과 현실을 오가면서 소통을 다루는 방식과 구성이 돋보입니다. =단편이라고 해도 반전은 있어야 하잖아요. (웃음) 토미야마의 대사에도 나오지만, 영화는 꿈이에요. 현실을 이상화하려는 감독의 꿈이 있고, 현실을 해소하고 싶은 관객의 꿈이 있고. 꿈에 우열이 없듯이, 영화에도 우열이 없는 거죠. 우리가 보거나 우리가 한 일은 꿈에 지나지 않는다는 에드거 앨런 포의 말을 원용해서 이야기를 구성했어요. 축제로서의 영화제의 분위기도 최대한 살릴 수 있을 것 같았고.

-장편 상업영화를 찍어도 좋을 스탭들을 한데 모았습니다. =김태용 감독은 단국대에서 일주일에 몇번씩 자주 만나는 사이니까 조감독을 맡아달라고 했어요. 격이 맞지 않는 청이었지만 본인이 현장에서 조감독을 해본 경험이 없다면서 흔쾌히 하겠다고 했어요. 주변에 있는 영화인 중 친한 사람들 중심으로 부탁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김형구 촬영감독도 자기 팀을 다 데리고 와서 작업해줬어요. 방준석 음악감독도 <라디오 스타> 때부터 잘 알고 지낸 사이라서.

-소식 듣고 자진해서 나선 분도 있을 것 같은데요. =(웃음) 강우석 감독은 크레딧에 이름 올라가는 것 아니냐면서 자신이 편집은 잘한다고 맡겨달라 그랬어요.

-실제 감독, 배우, 영화평론가, 영화제 관계자 등을 캐스팅했기 때문에 흥미로운 캐릭터가 만들어진 것 아닐까요. =실명으로 했더니 더 실감이 나는 것 같아요. 싸움꾼을 누구로 할 것이냐가 고민이었는데, 아무래도 외국 사람이 낫지 않겠는가. 그래서 이참씨를 할까 아니면 달시 파켓을 할까 그랬죠. 근데 두 사람 이미지가 싸움꾼은 아니란 말이죠. 거구도 아니고. 마침 토니 레인즈가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해 한국에 왔던 터라 연락을 했죠.

-동상이몽, 동문서답하는 상황에서의 반복되는 언어유희가 재밌습니다. ‘삐쳐’, ‘피쳐’ 같은 문답 말이지요. 시나리오에 있던 장면인가요 아니면 배우들이 촬영장에서 즉흥적으로 만들어냈나요. =‘월드’, ‘올드’도 있고. 대부분은 현장에서 배우들이 만들었어요. 우리 둘이 합하면 (연기 경력이) 100년 가까이 돼, 이런 대사도 안성기씨 애드리브예요. 사전 미팅 때도 대본에 구애받지 말고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가자고 했어요. <달빛 길어올리기>를 비롯해서 몇번 출연한 적이 있는데 대본 가지고 하면 연기가 잘 안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컷 소리가 너무 작아서 배우들이 첫날 놀렸다고 하던데요. =그러진 않았어요. 저도 마이크 체질이기 때문에 마이크 한번 잡으면 목소리가 커져요. (웃음) 다만 첫날은 어디서 컷을 해야 할지 몰라 당혹스럽긴 했어요. 그래서 김형구 촬영감독이 불평을 하고. 그래서 조금 지나고 나선 요 정도면 됐다, 빨리 컷하고 오케이 놔주고 그랬어요. 스탭들이 다 도사고 배우들도 다 1급이니까.

-촬영장에 놀러온 영화인들도 많았을 텐데요. =많이들 오셔서 점심, 저녁을 많이 샀어요. 단편영화니까 많아야 20∼30명이라고 생각했을 텐데, 한번 밥 먹으면 80명에서 많을 때는 100명이 다 돼요. (웃음) 토니 레인즈 다큐멘터리팀, 정성일씨 다큐멘터리팀, 모흐센 마흐말바프 다큐멘터리팀까지 대식구였어요.

-임권택 감독님은 잠깐 출연도 하셨는데요. =본인은 대사가 많은 줄 알고 가방 속에 넥타이도 서너개 준비해왔는데 계단에서 내려오는 한 장면으로 끝내버렸어요. (웃음)

-임권택 감독님이 계단 내려오실 때 휴대폰을 꺼내 드는 장면은 따로 부탁하신 건가요. =본인 설정이에요. 그 짧은 순간에 휴대폰을 빼는 것을 보면서 감독은 역시 감독이구나 그랬어요.

-이번에 작업한 배우, 스탭과 함께 다시 3일 동안 찍는다면 어떤 부분이 달라질 것 같나요. =그보다는 두편 정도 더 찍어보고 싶어요. 이번엔 심사위원을 찍었으니까 관객과 스탭들의 이야기로 드라마를 만들면 어떨까 해요. 그렇게 세편 옴니버스로 모아서 축제라는 제목을 붙이면 더 좋을 것 같고. 욕심이 들긴 하는데 이번 것보다 졸작이 나올 수도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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