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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살육의 서막
이화정 사진 최성열 2012-11-06

미셸 아자나비시우스 감독, 톰 행크스 출연의 <야수의 정원>

<야수의 정원> 에릭 라슨 지음 / 은행나무 펴냄

톰 행크스.

<야수의 정원> In the Garden of Beasts 감독 미셸 아자나비시우스 / 출연 톰 행크스 / 개봉 2014년

<야수의 정원>의 후반 506쪽부터 580쪽, 대략 한 챕터가 빽빽하게 주석과 참고문헌으로 할애된다. 히틀러가 베를린을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고 가기 바로 직전, 1933년 베를린의 거리를 눈에 보이듯 생생하게 재연하기까지, 논픽션 작가 에릭 라슨은 어떤 편법도 동원하지 않는다. 그의 말을 빌리자면, 이 책은 ‘아무리 작은 사건을 조사하더라도 반드시 읽어야 하는 히틀러와 2차 세계대전에 관한 방대한 역사서’와의 씨름을 통해 만들어진 역작이다. 히틀러가 만들어낸 전쟁 풍경의 깊이와 너비는 상상 이상으로 컸고, 집필 내내 에릭 라슨은 그 공포를 고스란히 체험하며 어둠의 심연으로 빠져들어야 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벌어진 끔찍한 살상의 현장은 이 책에 없다. 500쪽에 달하는 <야수의 정원>은 오히려 그 끔찍한 역사적 사건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기 전에 끝을 맺는다. 대신 에릭 라슨이 매달리는 주제는 히틀러와 나치당이 유발한 2차대전의 살상을 왜 미리 깨닫고 미연에 방지하지 못했을까라는 의문에서 출발한다. 저간의 사정엔 미국에서 시작된 경제공황의 여파로 인한 독일 중산층의 몰락, 그로 인한 극우파 나치당의 급성장, 독일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존재했던 똑똑하고 부유한 유대인에 대한 애증, 고립주의 원칙에 의해 나치당의 만행을 묵과한 국제사회의 이권이 깔려 있었다. 히틀러는 결국, 편견과 이기심이, 무지와 환상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낳은 괴물같은 존재다.

태풍의 눈 속에서 관찰과 체험을 동시에 해낸 인물은 윌리엄 도드 미국 대사로, 이 책은 그가 베를린에 재임하는 1년 동안 그와 바람기 많았던 딸 마사의 행적을 기록한다. 우드로 윌슨의 추종자였던 도드는 히틀러 정권을 미국민주주의로 인도하려 했으나 점차 환멸을 느끼며, 독일 간부와 염문설을 뿌리면서 히틀러를 옹호했던 마사 역시 나치당의 본색을 깨닫고 러시아 첩보 활동에 협력하게 된다. 이미 결과를 아는 이야기인데도,<야수의 정원>은 촘촘한 자료와 캐릭터 묘사로 마치 잘 짜인 소설을 보는 듯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톰 행크스가 제작자로 살 떨리는 전쟁과 살육의 서막을 영화화하기에 이르렀고, 주연배우 도드의 역할까지 맡았다. 아름다운 베를린의 산책로에 도사린 공포를 찾는 건 <아티스트>를 연출한 미셸 아자나비시우스 감독이다. 아무래도 가장 중요한 건 마사 역할이지 싶다. 지치지 않는 남성편력으로 사교계의 꽃으로 활약했던 여성이라니. 히틀러와 직접 대면하는 장면까지 연출해낸 그녀의 일거수일투족 모두가 극적인 에피소드다. 이만큼 영화화하기에 신나는 캐릭터도 없어 보인다. 현재 마사 역엔 내털리 포트먼이 거론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확정은 아니지만 더 따져볼 필요가 있을까 싶다.

원작의 강박에서 벗어나자. 에릭 라슨의 원작이 가진 분량은 어마어마하다. 그걸 다 스크린으로 꾸겨 넣으려고 했다간 이도저도 안되기 십상이다. 포기할 건 깔끔하게 포기하고 가자. 도드나 딸 마사를 지켜보며 객관성을 유지하려 했던 원작의 시선을 교정하는 것도 영화의 선택일 수 있다. 미국과 독일 양쪽 모두에게서 ‘왕따’로 내몰렸던 도드, 방탕한 자유연애주의자인 마사의 캐릭터를 한층 부각시키고, 주변 인물들을 축소시켜 캐릭터화하는 작업이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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