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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번의 웃음, 한 방울의 눈물
이후경(영화평론가) 사진 최성열 2012-11-06

이누도 잇신이 영화화하는 시대물 <노보우의 성>

<노보우의 성> 와다 료 지음 / 들녘 펴냄

<노보우의 성>

<노보우의 성> のぼうの城 감독 이누도 잇신, 히구치 신지 / 출연 노무라 만사이, 에이쿠라 나나, 나리미야 히로키, 야마구치 도모미쓰, 가미지 유스케 / 일본 개봉 11월2일

노보우란, 데쿠노보우의 준말로 바보, 멍청이를 뜻한다. 오시성 사람들은 죽은 아버지를 대신해 총사령관 자리에 앉은 나리타 나가치카를 ‘노보우님’이라고 부른다. 키만 멀대같이 커서 어슬렁어슬렁 걷는 모습과 속을 알기 어려울 정도로 멍한 표정이 그저 헐렁해 보이는 인물이다. 그는 문무보다 농사일에 관심이 많은데, 의욕만 앞섰지 행동은 어설퍼서 농민들에게 별 도움이 못된다. 하지만 그에게는 이상한 ‘흡인력’이 있어 가신들과 백성들은 그를 아껴 마지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돌이킬 수 없는 사건이 벌어진다. 오시성을 내놓으라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군사들을 상대로, 이 얼간이가 전쟁을 선포해버린 것이다. 더욱 놀라운 건, 그가 그만의 희한한 전술로 그들을 격파해나가는 과정이다. 그의 전력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그를 알거나 만나본 자들은 하나같이 그의 불가해한 면모에 난색을 표하는데, 와다 료의 <노보우의 성>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도 그 아리송한 캐릭터에 있었을 것이다.

그 때문에 이 영화의 크레딧에서 이누도 잇신이라는 이름보다 노무라 만사이라는 이름에 눈이 먼저 간다. 일본에서는 교겐을 계승할 중요무형문화재로 독보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배우다. 가문 전통의 엄격한 훈련을 받으며 자란 그는 17살에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에서 피리 부는 눈먼 소년으로 데뷔한 뒤 TV시대극 <아구리>, 영화 <음양사>를 거치며 그만의 자질을 입증했다. 교겐을 기본으로 한 유려한 몸 연기, 안정적인 발성은 물론이고 말끔한 이목구비에서 풍겨나오는 신비로운 분위기가 특별했다. <음양사>의 원작가가 괜히 그를 주연으로 고집했던 게 아니다. <노보우의 성>의 이누도 잇신과 히구치 신지 감독에게도 그는 양보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특히 한 장면 때문이었다. 상대의 수공(水攻)에 밀려 아군의 사기가 꺾이자 노보우가 갑자기 적군을 찾아 한바탕 춤을 추는 장면이다. 그 춤으로 전세는 역전된다. 이누도 감독은 “2만명에 이르는 적군과 아군을 한번에 정리할 만큼 춤에 설득력이 있어야 했다”고 그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가 저 이상한 영웅의 풍모를 어떻게 육화해냈을지 궁금하다.

그래도 국내에서는 이누도 잇신이라는 이름에 주목도가 더 높을 것이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메종 드 히미코>의 이누도 잇신이 시대극을?’이라는 질문도 충분히 제기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언젠가 “본능적으로 정형화된 무엇보다는 이상하고 바보 같은 이야기에 끌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혹은 자기 영화의 패턴을 “하나의 집이 있고, 거기에 특이한 사람이 살고 있다. 그것이 같은 구조로 반복된다”고 설명한 적이 있다. 그리고 좋아하는 감독으로 샘 페킨파를 꼽으며 그의 영화에서 “시대가 변해도… 혼자 변하지 않고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시험해보는 인물”을 중요하게 꼽았다. 그 말을 모아보자면, 오시성에 사는 희한한 바보가 격동의 시기에도 인간적 가치를 고수하며 전쟁에서 끝내 이긴다는 이야기의 이 무협 시대극은 그가 충분히 끌릴 만한 소재다. 그 소재로부터 그는, 중심에서 벗어난 인물들을 다루며 으레 그래왔듯 이번에도 열번의 웃음 속에서 한 방울의 눈물을 길어올릴 예정이다.

유비에게 관우와 장비라는 든든한 아군과 조조와 손권이라는 출중한 적수가 있었듯, 노보우에게도 단바, 이즈미, 유키에라는 믿음직스러운 장수들과 미쓰나리, 요시쓰구라는 싸워볼 만한 상대가 있다. 등장인물이 많고 모두 각기 다른 동기를 갖고 전쟁에 뛰어드는 만큼, <노보우의 성>의 성패는 그들 각자의 사연과 강약점을 어떻게 균형있게 배치하고 조화시켜내는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