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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은의 TVIEW] 이제 감 좀 잡았구나!

온 가족이 함께 웃을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다시 자리잡은 KBS <해피선데이-1박2일>

나이 들면서 점점 견디기 힘들어지는 것 중 하나가 부모님, 특히 아버지와 함께 TV를 보는 시간이다.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며 웃고 있으면 “쟤네 유치하다”고, 로맨틱코미디에 빠져 있으면 “작가가 회사생활 한번 안 해본 게 틀림없다”고, 사극이면 “역사적으로 말이 안된다”며 옴부즈맨 프로그램인 양 깨알같이 쓴소리를 하시는 통에 도무지 흥이 깨져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가끔 별 말씀 없는 날에도 주인공들이 뭔가 어설픈 대사를 읊거나 개연성 없는 상황이 벌어질 낌새가 보이면 안절부절못하기를 수차례, 결국 리모컨을 내려놓고 조용히 방에 들어가 인터넷으로 실시간 방송 사이트에 로그인하는 것이 마음 편하다는 진리를 깨달은 것도 한참 전의 일이다.

그런데 이 까다로운 아버지의 커트라인을 넘어 1주일에 딱 한번 온 가족이 거실에 모여 TV를 볼 수 있게 해준 프로그램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KBS <해피선데이-1박2일>이었다. 평소 강호동에 대해 ‘정신 사납다’며 탐탁지 않아 하시던 모습은 간데없이 그가 장터 할머님들과 동네 이장님을 허리 굽혀 모실 때마다 흐뭇한 웃음을 지으시는 아버지의 <1박2일>에 대한 애정 덕분에 모처럼 찾아왔던 가족간의 평화롭고 단란했던 시간은… 올 2월 <1박2일> 시즌1이 막을 내리며 끝이 났다.

물론 이수근, 김종민, 엄태웅 등 시즌1에 이어 남은 멤버들에 김승우, 차태현, 성시경, 주원이 더해진 시즌2가 바로 시작되었지만 열성 팬의 마음을 사로잡기는 역부족이어서, 한참 방송을 보다가도 불쑥 “강호동이가 잘했어…”를 한숨처럼 내뱉으시던 아버지는 급기야 IPTV와 케이블 채널을 통해 시즌1을 반복 시청하시며 그리움을 달랬다. 그리고 KBS <승승장구>를 진행하며 젠틀함과 민숭맨숭 사이를 오가던 김승우와 첫 촬영에서 “여행 싫어하고 찾아다니는 걸 귀찮아하고 게임도 못하고 결정적으로 상식이 없다”고 자신의 예능 약점을 실토한 차태현, 이 시대 최고의 댄스곡을 불렀지만 본업은 발라드 왕자인 성시경에 그때까지만 해도 본명보다 KBS <제빵왕 김탁구>의 ‘마준이’로 익숙하던 신인 주원까지, 낯선 야생 버라이어티에 내던져진 새 멤버들이 적응할 새도 없이 KBS 파업을 맞은 시즌2는 천번을 흔들리면서 어른이 되… 지는 않았고 시청률이 뚝 떨어졌다.

하지만 “파업 전의 높았던 시청률보다 지금의 18%가 더 의미있다”는 최재형 PD의 말처럼 시즌1의 후광을 벗어버리고 시즌2의 색깔을 분명히 내기 시작한 요즘의 <1박2일>은 예전과 또 다른 재미가 있다. 강호동 같은 추진력이나 이승기 같은 센스는 없지만 사람 좋은 옆집 아저씨처럼 동생들이 뭘 하든 허허 웃으며 감탄하고 칭찬하는 맏형 김승우부터, 떡갈비가 먹고 싶으면 “떡갈A 다음이 뭐죠?” 같은 창의적 질문을 던지는 김종민까지 어딘가 느슨하고 어설픈 남자들의 귀여움 때문이다. 배우임에도 ‘눈물 빨리 흘리기 게임’에서 패배했던 김승우, 엄태웅, 차태현이 모여 앉아 잘할 수 있는 게임으로 ‘얼굴 늙기’, ‘땀구멍 누가 더 큰가’를 진지하게 의논하는 풍경이라니. 게다가 MBC 라디오 <FM 음악도시>의 차가운 도시DJ, 심지어 내 여자에게도 안 따뜻할 것 같던 도도한 남자 성시경마저 밥이 걸린 게임 앞에 이성을 잃고 상식 퀴즈 때는 “(답은) 알았는데 확실치가 않았어요…”라며 꼴찌를 하는 바람에 ‘성충이’로 전락하는 현장은 마침내 아버지로부터 “쟤들이 이제 좀 감을 잡은 것 같다”는 후한 평가를 얻기도 했다.

그러니 지난 3월, 새 멤버들과의 두 번째 여행에서 타임캡슐을 묻을 당시 일단 6개월치 보관료만 냈던 제작진의 불안한 마음은 이제 슬슬 넣어둬도 될 것 같다. 한시도 자리를 뜰 수 없을 만큼 박진감 넘치는 재미나 트렌드를 앞서가는 세련됨은 없지만, 멤버들의 실없는 농담이나 별것 아닌 장난에도 그냥 함께 웃게 되는 편안함은 시즌2에서도 <1박2일> 특유의 매력이다. 무엇보다 1주일에 한번이나마 아버지와 함께 TV를 볼 수 있는 시간을 돌려주었다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무척 고마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