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이맘때 만난 어떤 남자 이야기. 그는 내 자동차 안에 있던 CD들을 뒤적거리다가 무슨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양 잔뜩 흥분해서 마구 떠들었다. “뭐야? 이건 패티 스미스잖아.” (‘잘난 척하지 않는 예술가로서 존경하는 여성 록 뮤지션은 오직 그녀뿐’이라는 내 대답에) “와, 처음 봐. 남자든 여자든 패티 스미스를 아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좋아한다는 사람도 네가 처음이야. 남녀 통틀어.” 그러면서 감탄했다는 듯 나를 유심히 쳐다본다. 솔직히 웃긴다. 그 이름 하나 알고 노래 몇곡 아는 게 무에 그리 대단한 거라고 저렇게 방방 뜰까? 물론 나이가 들수록 자신과 코드가 맞는 사람을 만난다는 게 그리 쉽지 않은 일이란 걸 생각해보면 이해도 된다. 나중에 듣자 하니 그는 내가 패티 스미스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세상의 모든 여자와 나를 분리시키며 이상화하는 동시에 자신과 동일화하는, (스탕달이 <연애론>에서 말한) 일종의 ‘결정화 과정’을 거쳤던 모양이다. 덕분에 패티 스미스가 우리의 동거 날짜를 한 5개월쯤은 앞당겼을지도 모르고. 워낙에 패티 스미스를 여러모로 흠모해서 그녀가 3년 전 지산밸리록페스티벌에 왔을 때 무려 6쪽이나 되는 인터뷰 기사를 쓰기도 했지만, 남편 때문에도 내겐 너무 특별한 아이콘이 된 이가 바로 패티 스미스다.
그런데 얼마 전 반가운 선물이 도착했다. 한적하기 짝이 없는 산골 마을에 살다보니 일주일에 두어번 찾아오는 우체부 아저씨가 신용카드 고지서만 주고 가도 반가운데 그날은 ‘대박’인 것이 방금 나온 패티 스미스의 신간 <저스트 키즈>를 주고 갔다. 우리 커플이 패티 스미스를 좋아한다는 걸 아는 지인이 보내준 예상치 못한 호의였다.
단숨에 읽었다. 살아 있는 나의 영웅이 쓴 책이라 아주 잘 읽혔다. 1970년대 뉴욕의 아방가르드 문화를 대표하는 펑크록의 대모이자 음악으로 세상을 바꾸려고 했던 낭만적인 선동가였고, 뮤지션 이전에 랭보를 사랑해서 시인이 되고자 했던 여자. 그리고 내겐 무엇보다 화이트 셔츠에 대충 걸친 타이 차림으로 무심하게 로버트 매플소프의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던 최고의 스타일 아이콘으로 기억되는 여자. 그녀를 둘러싼 모든 신화들이 속속 그 생생한 얼굴을 드러내는 가운데 특히 패티 스미스와 에이즈로 죽은 그의 연인 로버트 매플소프와의 러브 스토리인 동시에 음악과 예술, 그리고 혁명이 가장 사랑스럽게 뒤엉켜 놀며 엄청난 에너지를 발산하던 60, 70년대 뉴욕이라는 공간에 대한 헌사처럼 읽히는 책이었다.
예술과 사랑에 대한 이 엄청난 이야기를 누군가가 영화로 만들어주면 좋겠다. 내가 감독이라면 15살에 아이를 낳아 입양 보내는 엄청난 시련을 겪은 말라깽이 루저 소녀가 신문 가판대 서점에서 랭보 시집을 훔치는 장면에서 시작할 것 같다. 그러곤 주크 박스에 동전을 넣어 존 레넌과 니나 시몬의 노래를 차례대로 듣고 있자니 뉴욕행 버스가 도착한다. 드디어 앤디 워홀을 꿈꾸는 순수 예술 청년 로버트 매플소프와의 러브 스토리가 시작되고 첼시호텔을 배경으로 지미 헨드릭스가 지나가고 재니스 조플린의 맛이 간 모습도 보인다. 비트족풍으로 한껏 멋을 내고 거리에 나가 데모 행렬과 뒤섞인 그들을 보고 어느 노부인이 “예술가 커플 같다”고 하자 남편이 대답한다. “그냥 애들이야.”(They’re just kids) 아이처럼 순수했던 두 예술가의 가장 찬란했던 시절의 이야기. 에이즈로 죽은 로버트 매플소프에 대한 깊은 애도로 끝을 맺는 패티 스미스의 이야기는 우리로서는 도저히 이름 붙일 수 없는 그들만의 순수한 사랑과 우정에 경의를 표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