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이 육아 때문에 일을 못한다고들 하는데 (중략) 애 젖 먹이면서 주방에 앉아서 ‘웰빙 진생쿠키를 만들었다’고 구글에 올리면 전세계에서 주문을 받을 수 있는데, 이런 어마어마한 가상 세계를 두고 왜 젊은이들은 수동적으로 대응하느냐.” 새누리당 공동선대위원장이자 성공한 여성 기업가의 열정적인 메시지에 애 들쳐업고 기미 잔뜩 낀 얼굴로 설거지 쌓여 있는 부엌서 필사적으로 ‘웰빙 진생쿠키’를 만들고 있는 우울한 풍경을 상상한다. 접점이 없는 사람의 훈계나 조언이 불러오는 이런 식의 ‘온도차’는 혜민 스님이 맞벌이 엄마에게 “엄마가 어린애들 일어나는 새벽 6시부터 45분 정도 같이 놀아주”라 조언했던 것도 마찬가지. 인심을 얻고 싶은 자들은 공감과 힐링의 기술을 연마하는 이때, KBS2 <울랄라 부부>는 ‘주부 힐링 드라마’를 표방하고 나섰다.
바람난 남편 고수남(신현준)과 그 현장을 두눈으로 목격한 아내 나여옥(김정은)이 이혼한 뒤 영혼 체인지로 인한 소동극을 그린 <울랄라 부부>는 독립투사와 그를 사랑하던 게이샤였던 두 사람의 전생이 현생의 열쇠가 된다. 극중 ‘부부 인연설’을 설파하는 월하 노인(변희봉)은 수남과 여옥의 인연을 매개하고 영혼을 바꾸며 이들의 삶 곳곳에 노골적으로 개입한다. 또한 이 드라마는 종종 화면 밖의 시청자를 향해 직설적인 메시지를 던지는데 ‘남편 휴대폰에 아내 이름이 어떻게 저장되어 있는지 당장 확인해보시라’거나 “대한민국 아줌마”의 노고와 불륜남에 대한 분노를 토로하고 맞장구치는 것을 듣고 있으면 타깃 하나는 확실하구나 싶다.
그런데 이 타깃을 겨냥하는 여주인공 여옥 캐릭터는 마치 적중률을 높이기 위해 촉을 여럿 달아놓은 화살 같아 흥미롭다. 볕이 잘 드는 복층 아파트에서 완벽한 화장과 세련된 옷차림으로 야무지게 살림을 하는 30대 전업주부의 외양과 (수남의 몸에 들어간 여옥이) 지하철 문이 열리자마자 검은 비닐봉투를 던져 좌석을 확보하고 손가락을 쪽쪽 빨며 꽈배기를 먹다 옆자리 여학생에게 말참견을 하는 모습의 대비. 극중 무시당하는 고졸이라지만 영국과 미국을 퉁치려 드는 무식함. 이혼 전에 아파트와 적금통장을 모두 제 앞으로 돌려놓는 주도면밀함과 식구들 몰래 시누이를 위해 사들였던 재개발 예정지의 빌라는 놔두고 가는 너그러움 등을 종합하면, 나여옥은 30대부터 60대까지의 대한민국 주부에게서 연상되는 선망이나 미덕, 동질감, 경멸 등의 이미지를 수집해 어떻게든 접점을 만들어두려는 시도의 결과물처럼 보인다.
여옥의 마음이 누그러지고 눈물을 흘리는 대목을 살펴보는 것도 재밌다. 6회까지 고수남이 여옥의 맺힌 마음을 풀어주는 힐링을 시도하는 국면은 바뀐 몸에도 불구하고 성욕이 발생할 때, 그리고 여옥이 사둔 빌라가 여동생 명의로 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된 뒤다. 속보이는 위로에도 눈물을 뚝뚝 흘리는 대한민국 아줌마의 약한 마음(그리고 정신을 차리면 다시 투지를 불태운다). 심지어 수남의 몸을 한 여옥은 내연녀 빅토리아(한채아)를 만나 그녀의 불행한 과거사와 지극한 사랑고백을 듣게 되자 ‘수준이 안 맞는다’는 이유로 차였던 첫사랑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린다. “영혼이고 뭐고 바꾸지 말고 그냥 이대로 살까? 나는 빅토리아의 목숨 같은 사랑을 받으면서 살고, 네가 사랑하는 그 사람은 집에서 빨간 고무장갑 끼고 뺑뺑이 돌면서 살고 그게 완벽하게 복수하는 것 같아.” 존중받지 못하는 스스로를 가엽게 여기는 마음은 남편 내연녀의 순정에도 감정이입하는 경지에 다다랐다. 이것은 자가 치유의 과정일까, 부작용일까? 어쩐지 처첩이 서로를 연민하며 만수산 드렁칡처럼 얽혀 살기도 하던 조상할머니 마음속 응어리를 알 듯 모를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