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바흐만 고바디를 쿠르드족 영화의 대변인으로 인식한다. 적절한 이해다. <취한 말들의 시간>, <고향의 노래>, <거북이도 난다>, <반달> 등 그는 매번 이란 내에 살고 있는 쿠르드인을 주인공으로 하여 영화를 만들어왔다. 쿠르드인의 삶과 예술 혹은 그 삶과 예술에 끼어든 억압과 피폐함에 관하여 다룬다. 그 영화들이 대개 뛰어나다. 그런데 그의 신작 <코뿔소의 계절>은 고바디가 이란을 벗어나 터키에서 만든 영화다. 이란에서는 더 이상 영화를 만들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이란의 이슬람혁명 당시 정치범으로 투옥되어 30여년의 옥살이를 한 뒤 감옥에서 풀려난 쿠르드족 출신의 시인 사데 그 카망가르의 실화를 소재로 했다. 시인이었다가 죄수가 된 사람, 사연 많은 이야기를 바흐만 고바디는 뛰어난 이미지로 그려낸다.
-지금 당신이 처한 상황부터 물어보고 싶다. 당신이 이란 내에서 영화를 만드는 건 거의 불가능해진 상태인가. =물론 마음만 먹으면 돌아갈 수는 있다. 하지만 입국 절차를 밟는 동안 여권을 빼앗길 위험도 있고 또 다시 정부의 압박을 받을 수도 있어서 조심스럽다. 실은 돌아가지 않는 당장의 이유로는 네덜란드와 미국 등지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들이 있어서다. 네 개 정도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 중이다. 미국에서는 두 편을 진행 중인데 그 중에 하나는 애니메이션이다!
-이란 혁명 당시에 정치범으로 투옥된 쿠르드족 시인 사데그 카망가르의 실화를 소재로 했다고 들었다. 그의 삶의 무엇이 당신의 흥미를 끌었나. =처음부터 그의 이야기를 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의 삶의 궤적이 내가 생각했던 어떤 아이디어와 연결되었다고 보는 편이 더 맞을 거다. 그보다 이 영화의 시작에 있어서 훨씬 중요한 건 내가 오랫동안 존경해 온 배우, 이 영화의 주연을 맡은 베흐루즈 보수기였다. 그는 한때 이란의 말론 브란도로 불렸던 배우였지만 35년 동안이나 망명생활을 하면서 출연한 영화가 한두 편에 불과하다. 망명자로 산다는 것은 오히려 감옥에 있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5~6년 전에 그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무언가 그런 상태를 대변할 만한 실화를 찾아보자고 제안하더라. 그러던 중에 시인 카망가르에 대해 알게 되면서 기존에 구상했던 시나리오를 대폭 수정했다.
-그렇다면 주연 배우 베흐르주 보수기가 그 시작이었던 셈인데 그의 어떤 점들이 그렇게 매혹적이었나. =나는 유년 시절에 극장을 밥 먹듯이 갔다. 어머니는 늘 당부 말씀을 하셨다. 나쁜 영화는 절대 보지 말라고. 그 말을 늘 따르려 했다. 그런데 그때 보았던 거의 모든 좋은 영화에 바로 그가 출연하고 있었다.
-작업은 실제로 어땠나. 당신 스스로에게 어떤 성취감을 주었나. =<코뿔소의 계절>은 내가 처음으로 전문 배우들과 함께 만든 영화다. 비전문 배우들과 일할 때와는 달라야 한다는 압박감이 심했다. 시나리오는 있었지만 어떻게 연출할지는 감이 오지 않았다. 그러다 이렇게 마음먹었다. 써놓은 시나리오를 버리자, 스토리만 기억하고 현장에 가자, 현장에서 내가 시인이 되자, 그리고 카메라를 펜 삼아 시를 쓰자. 시네마-포이트리(cinema-poetry)를 염두에 둔 것이다. 이 영화를 만들기로 결정했던 순간은 여러모로 내게 개인적으로 중요하다. 많은 나라를 가보았지만 결국은 400만의 쿠르드족이 있는 터키에서 영화를 만들게 된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싶다. 나는 이 영화를 죽지 않기 위해 만들었다. 나의 삶의 원동력, 살아갈 이유를 찾기 위한 치료약이 <코뿔소의 계절>이다. 이 영화 덕분에 살게 된 거다.
-서구의 유명 배우인 모니카 벨루치와는 어떻게 일하게 된 것인가. =처음에는 같은 역할에 이란 여배우를 기용하려 했다. 하지만 아무도 하려 하지 않았다. 나와 일하면 다시는 이란에 돌아가지 못할까봐 다들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래서 외국 배우 중에 이란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의 생김새를 지닌 외국 여배우를 찾다가 그녀를 떠올렸다. 그녀가 출연한 영화 <말레나>도 좋게 보았고. 고맙게도 만난 지 몇분 만에 수락해주었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되 영화 내내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이 계속 흘러나온다. 어떤 정서적 효과를 위한 것이었나. =그건 이란의 저명한 여류 시인의 시다. 처음부터 영화가 무겁고 조용하고 차분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런 보이스오버 내레이션이라도 얼마간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전체를 다소 부드럽게 만들어보자는 생각이었다고 할까.
-서로 독방에 갇혀 있던 부부가 수년이 지나 감옥 안에서 잠깐 만나는 장면이 있다. 그런데 그들은 얼굴에 두건을 쓰고 있어서 서로를 만질 수는 있지만 보지는 못한다. 전적으로 당신의 상상력이 만든 장면인가. =이란 대통령 선거 몇 년 전에 나도 투옥된 적이 있다. 그래서 내겐 감옥 친구들도 많다. (웃음) 실은 그 장면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 중 하나다. 그런 비슷한 식으로 정치범들을 만나게 해준다는 이야기를 언젠가 얼핏 들었다. 시간은 딱 20분이 주어지지만 서로 만지거나 키스도 못하고 검은 비닐봉지를 뒤집어 써 상대방을 볼 수 없게 한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그 비닐봉지의 물성과 소리가 생생하게 떠올라 만든 장면이다.
-영화 만들기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어떻게 변해왔나. =음… 사실은… 처음부터 영화를 사랑한 적이 없고 행복한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웃음) 항상 어마어마한 스트레스와 억압 아래 있어서 그런 것 같다. 과거로 돌아가면 영화감독이 아니라 차라리 작곡가나 아니면 나사(미국항공우주국)에서 일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