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Magazine > 칼럼 > TView
[최지은의 TVIEW] 관록과 돌발의 조화

Mnet <슈퍼스타 K4>를 보는 가장 큰 이유, 이승철에 대하여

연예인 매니저로부터 갑자기 연락이 오면 긴장된다. 왜? 매니저들에게 수시로 전화해서 인터뷰 좀 잡아달라고 매달리는 것은 본래 나의 몫이므로. 애프터할 생각 없는 도도한 소개팅남처럼, 스타의 매니저들은 운전 중이거나 회의 중이거나 아무튼 항상 이런저런 이유로 바쁘기 때문에 굳이 나 같은 기자에게 먼저 전화할 이유가 없다. 그러니 만난 적 없는 연예인의 매니저에게 연락이 오는 것은 어쩐지 불길한 징조다. 예를 들어 기사에 대한 항의라거나, 항의… 라거나, 항의 같은 것?

자신을 “이승철씨 매니저입니다”라고 밝힌 2년 전 그날의 전화에도 나는 매우 졸았다. 당시 Mnet <슈퍼스타 K2>에서 한창 독설을 퍼붓고 있던 심사위원장 이승철을 열심히 놀리고 살짝 비꼬기까지 한 기사가 막 나간 직후였기 때문이다. 물론 “어떻게 보면 촌스럽고, 나쁜 표현으론 구려!”, “노래방에서 여자들 꼬일 때 많이 불러본 솜씨네요” 같은 촌철살인에 물개박수를 치며 좋아할 만큼 그의 코멘트를 길티 플레저로 삼고 있던지라 숨겨왔던 나의 수줍은 마음 모두 담은 기사였지만, 혹시… 화를 내면 어쩌지? 설마… 법적 대응을 하겠다거나? 5초 사이 오만 가지 불안과 공포의 감정이 뇌리를 스쳤다.

하지만 그는 유머를 유머로 받아들일 줄 아는, 놀라울 만큼 예의 바르고 유쾌한 사람이었다. ‘형님’에게 관심을 가져줘서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눴는데 “미니홈피에 중학생들이 자꾸 악플 다니까 형님이 좀 상처받으세요. 말씀은 괜찮다고 하시는데…”라던 말에 웃음이 터져 주체할 수 없었던 기억이 난다. “가수는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거지 연습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라며 잘난 척해도 반박할 말이 없을 만큼,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기운을 온몸으로 뿜어내던 이 아저씨의 선글라스 뒤에 감춰져 있던 여린 마음이라니 이렇게 귀여울 데가!

그래서 한참 어리지만 오빠라고 부르고 싶어지는 왕자님 풍모의 로이 킴과, 누나 아니 이모라고 불러도 좋으니 옆에 앉혀놓고 밥 떠먹여 주고 싶은 천안 성환읍 출신 열여섯 소년 유승우와, 꼭 강동원 닮아서만은 아니고 정말 얼굴이 잘생겨서가 아니라 성격이 매력 넘치는 정준영과, 군복과 재능의 콜라보레이션 효과를 제대로 보여준 김정환 등 하반기 문자투표비 예산을 증액시키고 있는 각종 훈남들보다도 내가 <슈퍼스타 K4>를 보는 가장 큰 이유는 사실 이승철이다. 그가 부른 <슈퍼스타 K4> 엔딩곡 <아마추어>는 제목이 영 사기처럼 느껴질 만큼 여전히 쨍한 가창력으로 진짜 아마추어들의 기를 꺾어버리지만, 프로그램을 지탱하는 다른 한축이었던 윤종신의 공백까지 거의 혼자 책임져야 하는 이승철의 고군분투는 의외로 예능에 가까운 재미를 준다.

예선에 등장했던 ‘러통령’의 러시아어 개인기를 알아듣지 못하고 “몇년 살다 오셨어요?”라며 핀트 나간 질문을 던져 백지영에게 면박 당하는 허당 아저씨 이승철이나, 뽀얀 얼굴에 미성을 지닌 유승우를 흐뭇하게 보며 “어릴 때 나를 보는 것 같다”고 칭찬과 자기 자랑을 뒤섞는 주책 아저씨 이승철이 귀여운 것은 그의 말들이 진정 순수한 의도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방년 스무살의 로이 킴을 그윽하게 바라보며 “나 올해 마흔일곱이거든. 어려 보이지?”라고 당당히 옆구리 찔러 절 받는 태도는 진실로 자신이 동안이라고 믿지 않고서는 감히 가질 수가 없는 법이다. 대개 성공한 어른이란 위엄있는 얼굴로 남들의 예우를 기대하지만, 아무래도 희소가치나 보는 재미가 있는 것은 체통 따윈 벗어던지고 자잘한 욕망과 감정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사람이다. 비록 패자부활전도 슈퍼위크도 라이벌 미션도 예전의 두근거림은 간데없이 낚시와 방생의 반복으로 피로를 유발하는 <슈퍼스타 K4>임에도 독설 대신 돌발 멘트를 던지는 이승철이 올해도 금요일 밤의 내 리모컨 주인이 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