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강원도에 다녀왔다. 일을 끝내고 친구들과 함께 자동차를 타고 오게 되었는데, 토요일 오후인데다 여의도에서 세계 불꽃축제라는 걸 한다는 소식을 미리 접한 우리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목적지는 홍대 부근,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를 피해야 할 테고, 아, 어떻게 돌아야 정체를 피할 수 있을까. 작전에 작전을 거듭했다. 그 숨막히는 작전의 와중에 라디오에서는 <배철수의 음악캠프>가 흐르고 있었다. 내가 이럴 때가 아니다. 나는 친구들에게 절규했다. ‘최신가요인가요’를 써야 할 사람이 지난주 제대로 된 최신가요를 한곡도 듣지 않아놓고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도 팝송을 방송하는 프로그램을 듣고 있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운전을 하던 친구는 나를 위해 채널을 찾아주었다.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윤도현의 <가을 우체국 앞에서>. 계절이 가을의 한복판에 들어선 지금 이 노래를 선곡하다니, 배짱있는 피디군,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야말로 정면승부가 아닌가. 다음 노래가 나오는 순간, 차 안에 있는 모두가 탄식했다. 김광석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가 여보란 듯이, 이럴 줄 알지 않았냐며, 흘러나왔다. 그때부터 우리는 프로그램의 정체성에 대해서 토론을 나누기 시작했다. 늦은 밤 차 안에서 마땅히 할 일도 없었다. 프로듀서와 작가가 동일인물이 아닐까라는 의혹이 제기됐고, 다음으로 어떤 노래가 나오는지 맞히자는 제안을 내놓기도 했다. 방심하고 있는 사이에 김현식의 <내 사랑 내 곁에>가 시작됐다. ‘아, 정말, 이러긴가’ 하는 마음이 들었다. ‘야, 이러다가 이승환 노래도 나오겠다’라고 누군가 말했고, 우리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는 듯 이승환의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이 나왔다. 이것은 정말 비정상적인 라인업이다. 야구로 따지자면, 1번 김태균, 2번 이대호, 3번 이만수, 4번 이승엽, 5번 베이브 루스를 줄줄이 배치해놓은 격인데, 번트는 누가 대고 도루는 누가 하나.
이후에도 황규영, 한경애, 이상은, 샤프의 노래가 줄줄이 흘러나왔다. 친구들은 노래 가사를 대부분 알고 있었고, 다음에는 어떤 노래가 나올지 감을 잡고 있었다. 우리가 음악 선곡을 해도 될 지경이었다. 흘러나오는 곡들이 싫으면서도 좋았다. 좋으면서도 싫었다. 옛 노래라서 싫다가 추억이 묻은 노래들이어서 좋았고, 따라 부를 수 있어서 좋았고, 너무 많이 들은 노래들이라서 지겨웠다. 한창 예민하던 시절에 들었던 노래들, 수많은 일들이 일어날 때 들었던 노래들이다. 지난 시절도 마찬가지겠지. 좋으면서 지겹고, 싫으면서 그립겠지. 우리는 노래를 듣다가 조금 지친 것 같다.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를 피해 이리저리 돌아 홍대 근처에 왔을 때 밤 9시가 넘어 있었다. 사방이 어두웠다. 상암동 방면에서 쭉 뻗은 도로를 따라 홍대로 가는데, 갑자기 먼 하늘에서 폭죽이 터졌다. 불꽃놀이의 폭죽이 아름답게 하늘로 번져나갔다. 연이어 두발이 펑, 펑 터졌고, 곧이어 한발이 터졌다. 아름다웠다. 모두 소리를 지르면서 하늘을 가리켰다. 하늘은 다시 어두워졌다. 그날 12만발의 불꽃 중에 우리가 본 것은 세발뿐이었다. 우리는 하늘을 계속 보았지만 더이상은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