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 번 산 고양이> The Cat that Lived a Million Times 고타니 타다스케 | 일본, 중국 | 2012년 | 91분 OCT12 CGV3 13:00
다큐멘터리가 ‘죽음’을 소재로 담을 때, 가장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그 죽음을 전시하는 일이다. 하지만 너무 쉽게 다큐멘터리의 카메라들은 죽음이라는 ‘소재’에 매혹되듯 끌려 들어가 대상보다 앞서 죽음을 기다린다. 애도 없는 관음증적 시선은 불편하기 짝이 없다. 이러한 면에서 고타니 타다스케 감독의 <백만 번 산 고양이>는 다큐멘터리가 어떠한 방식으로 죽음을 대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담은 영화라 할 수 있다.
전 세계에 번역되어 사랑받는 <백만 번 산 고양이>라는 동화의 작가 사노 요코는 죽음을 앞두고 삶을 정리하고 있다. 동화 속 주인공 고양이가 매번 새로운 주인을 만났다가 그들을 떠나보내는 것처럼 다큐멘터리는 이 동화를 읽었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와 만난다. 동화의 이야기와 현실에서의 삶의 이야기가 교차되고, 고양이가 ‘백만 번’ 새로 태어나 매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동안 독자들은 나이 들어가고 사노 요코도 끝내 세상을 떠난다. 그녀의 장례식을 멀찍이 떨어져 지켜보던 고타니 타다스케의 카메라는 장례식장을 떠나가는 운구차를 한참 바라보다 문득 그 자리에 멈추어 선다. 찰나의 망설임 혹은 머뭇거림. 이 순간이 올해 본 어떤 다른 다큐멘터리의 순간들보다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그가 운구 행렬을 따라가는 대신, 그녀가 꼭 한번 다시 가보고 싶어 했던 베이징으로 떠나는 선택을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어떠한 호들갑스러운 슬픔도, 죽음을 전시하여 관객들의 눈물을 뽑아내려는 연출자의 얄팍한 욕심도 없다. 그저 카메라는 엄마가 읽어주는 동화책을 듣는 아이처럼 조용히 그녀가 남겨놓은 것들에 머물며 그것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뿐이다. 그 흔한 비유.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바람이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다. 그녀는 세상을 떠났지만 바람처럼 우리 곁에 남아 있다. 그리고 감독은 영화 내내 간간히 들리는 풍경 소리로 그녀의 존재를 상기시켜 준다.
덧붙임. 여기에 나온 <백만 번 산 고양이>라는 동화는 <카우보이 비밥>의 마지막화에 스파이크가 제트에게 들려준 바로 그 이야기,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