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가란 ‘생산하는 사람’이 아니라 ‘생산에 기생하는 사람’이다. 영화평론가란 대개 영화감독에의 꿈을 접은 사람들에게서, 음악평론가란 작곡이나 연주자의 꿈을 접은 사람들에게서, 문학평론가란 작가의 꿈을 접은 사람들에게서 출발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평론가란 대개 애초 생산을 꿈꾸었으되 재능의 부족이나 의지의 박약, 혹은 지나치게 운이 없어 꿈을 접었으나, 아예 그 바닥을 떠나려니 너무나 서럽고 딱히 갈 데도 없어 ‘남의 생산에 평론이나 일삼으며 사는 사람’이다.”
어떤 문화혁명
김규항이라는 ‘평론가’의 말이다. 엄밀히 말하면 그는 평론가가 아니라, 평론가를 평론하는 메타평론가다(소위 ‘지식인 비판’). 그의 논리대로라면, 메타평론가 역시 “평론을 생산하는 사람이 아니라 평론에 기생하는 사람이다. 애초 생산을 꿈꾸었으되 재능의 부족이나 지식의 박약, 혹은 지나치게 운이 없어 꿈을 접었으나, 아예 그 바닥을 떠나려니 너무나 서럽고 딱히 갈 데도 없어 남의 평론에 평론이나 일삼으며 사는 사람”이다. 김규항이 여기에 흔쾌히 동의할지 궁금하다.
김규항은 평론가라는 기생충에 “평론가를 상회하는 정보와 식견을 가진 대중문화의 수용자들”을 대립시킨다. “어릴 적부터 대중문화를 숨쉬듯 살아온 오늘의 수용자들에게 ‘생산에 대해 그리 아는 것도 없으면서 그럴싸한 글(말)이나 꾸며대는’ 평론가들은 골 아프고 불필요한 존재들이다. 결국 평론가들이 생산물이 갖는 의미에 집중할수록, 수용자들은 더욱 생산물 자체에만 집중하게 된다. 수용자들은 평론가의 권위를 무시하거나 노골적으로 반발하는 경향을 강하게 드러내는 중이다.” 과연 그의 말대로 “대중들은 잘난 그들에게 반감을 갖게 되었고 그 반감을 행동에 옮”겼다.
한국판 문화혁명 <디 워> 사태는 그렇게 일어났다. 대중이 행사하는 이 문화적 폭력을 김규항은 당시에 이렇게 정당화했다. “<디 워>를 옹호하는 사람들 역시 타인의 취향에 폭력적이지 않은가, 라는 반문은 맥락을 잃은 이야기다. 그들은 타인의 취향에 폭력적인 게 아니라 제 취향을 경멸하는 재수없는 인간들에 반발하는 것이다. 동네 양아치들이 싸우다 파출소에 잡혀가도 ‘선빵’을 가리는 법이다.”
소인 평론
김규항의 주장은 일련의 그릇된 명제들로 점철되어 있다. 1 ‘평론가는 생산을 모른다.’ 2 ‘평론가는 대중과 다른 존재다.’ 3 ‘예술은 취향의 문제다.’ 4 ‘평론가는 잉여, 혹은 기생충이다.’ 먼저 첫 번째 명제에 대해서. 사실 17세기만 해도 김규항의 생각은 사회의 상식이었다. “생산에 대해 그리 아는 것도 없”는 자들이 감히 예술을 논하다니, 이게 어디 있을 수 있는 일인가? 그리하여 그 시절 비평은 예술가들의 전유물이었고, 예술가들의 상호비평이 당시로서는 유일한 비평이었다.
이 모든 것을 뒤집어놓은 것이 평론가 로제 드 필. 그림을 그릴 줄 모르는 이 아마추어는 아카데미 화가들과 논쟁을 통해 ‘회화에서 윤곽보다 색채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관철시킨다. 그 덕분에 프랑스 미술은 이탈리아의 영향에서 벗어나 고유의 민족적 양식(로코코)을 확립한다. 아울러 이 새로운 비평문화는 그 뒤 프랑스를 세계 미술의 중심으로 만드는 데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근대적 비평은 원래 창작을 모르는 아마추어들의 비평, 즉 소인(素人) 비평으로 시작됐다.
평론가는 대중과 다른 존재일까? 아니다. 미학에서 평론가는 ‘대중의 일부, 즉 대중들 중에서 계발된 미적 취향을 가진 계층’으로 정의된다. 그들 중 극소수는 평론을 직업으로, 일부는 부업으로, 대다수는 취미로 한다. 사실 평론을 직업으로 하는 이들은 한국에서나 외국에서나 어차피 극소수에 불과하다. 기억해야 할 것은 <디 워> 때 대중에게 조리돌림당한 것은 직업적 평론가들만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 영화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표명한 모든 블로거들이 다 털렸다.
이른바 ‘취향’에 관하여
김규항은 대중의 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취향’이라는 말을 끌어들인다. “예술엔 맞다 틀리다, 혹은 옳다 그르다, 라는 게 없다. 취향이 있을 뿐이다. 예술이란 나에겐 천상의 아름다움인 게 다른 사람에겐 하품만 나오는 것일 수도, 나에겐 쓰레기인 게 어떤 사람에겐 삶의 위로일 수 있는 것이다. 만명에겐 만개의 취향이 있다.” 그러니 타인의 취향에 “선빵”을 날린 평론가들이 애초에 잘못했다는 얘기다. 여기서 영화의 미적 수준에 관한 논의는 졸지에 동네 양아치들의 주먹싸움으로 전락한다.
김규항은 ‘취향’(taste)이라는 말을 미적 상대주의와 동일시한다. 하지만 취미에도 ‘좋은’ 취미과 ‘나쁜’ 취미가 있다. 모든 취향이 동등하다면, 공모전은 뭐 하러 하며, 미술관에 이발소 그림 대신에 굳이 비싼 피카소의 그림을 걸어놓는가? 대중문화도 마찬가지다. 취미에 기준이 없다면, <슈퍼스타 K>도 굳이 할 필요없을 거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시청자 역시 각자 제 나름의 취향을 갖고 있을 거다. 그들 역시 누가 뽑힐지 예상하고, 그 예측들은 대체로 맞아떨어진다.
좋은 취향과 나쁜 취향의 구별이 없다면 평론가도 필요없을 거다. 김규항이 평론가를 기생충으로 보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가 과감히 무시하는 평론에는 크게 두 가지 역할이 있다. 첫째, 평론은 ‘작가→작품→관객’으로 이어지는 예술소통의 체계 속에서 ‘피드백’의 역할을 한다. 평론가는 작가에게 수용자의 반응을 전함으로써(관객→작가) 예술소통의 과정을 ‘원환’으로 완성한다. 둘째, 평론가는 미적 취향의 선진적 계층으로서 예술적 소양이 부족한 일반 대중에게 작가와 작품을 매개한다.
문학 장르로서의 평론
비평은 크게 기술(description)과 평가(evaluation)의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양자는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예리한 시각을 가진 평론가라면, 그만큼 더 적절한 평가를 할 수 있다. ‘천재’가 타고난 능력이듯이, ‘취미’ 역시 타고난 능력이다. 타고난 예술가가 있듯이, 타고난 평론가가 있다. 평론을 잘한다고 창작을 잘하는 것은 아니듯이, 창작을 잘한다고 평론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평론가는 그저 실패한 감독이 아니다. 사실 실패한 감독의 절대 다수는 그냥 감독 하고 있다.
고약한 것은 김규항의 주장이 미학적 견해라기보다는 정치적 선동에 가깝다는 점이다. 그가 사용하는 어휘부터 예사롭지 않다. 그는 ‘예술가’를 ‘생산자’, 평론가를 ‘기생자’라고 부른다. 이 30년대 취향에서 예술에까지 계급투쟁(생산계급 대 유한계급)의 틀을 외삽하는 그의 소박한 인민주의를 읽을 수 있다. 물론 민족해방의 수사도 빠질 수 없다. “한국의 영화평론가들이 평론가와 평론가 지망생, 인텔리들끼리 읽는 평론을 쓰기 시작했다. (…) 대부분의 평론이 그렇게 된 건 적이 식민지적 풍경이었다.”
어느 나라에서나 평론은 주로 “평론가와 평론가 지망생, 인텔리들끼리 읽는”다. 식민종주국이라고 다르지 않다. 차이가 있다면, 식민종주국에서는 평론의 독자층이 좀더 넓고, 김규항처럼 평론 자체를 적대시하는 무식한 계층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그의 인민주의적 반(反)엘리트 선동은 그러잖아도 척박한 이 땅의 문화수준을 바닥으로 끌어내릴 뿐이다. 인텔리라는 기생계층을 박멸해버림으로써 일거에 혁명적 구석기시대로 되돌아간 크메르루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