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최신가요인가요’ 글 중에 가장 인기가 많았던 것은 (뭐, 정확한 통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머니의 노래교실 이야기를 썼던 김연자의 <10분 내로> 편이었다. 글을 잘 읽었다고 인사를 해주는, 이른바 ‘피드백’이라는 것을 자주 받지 못하는 편인데 (지난 글에 밝힌 것처럼 가끔 추천곡을 받을 때도 있긴 하다) 김연자에 대한 글만큼은 여러 종류의 이야기를 들었다. 재미있었다는 사람도 있고, ‘너도 이제 늙었구나’ 싶었다는 사람도 있고, 마음이 짠했다는 사람도 있었다. 어머니의 이야기라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았나 싶다.
추석을 맞아 고향에 내려왔으므로 칼럼 한주분은 가뿐하게 우려먹을 수 있을 줄 알았다. 어머니에게 요즘 어떤 노래를 배우고 있는지 물어보고, 그 노래에다 적당히 소금치고 후추치고 두루치고 장식해서 내놓으면 간단할 줄 알았다. 하지만 세상사란 게 늘 그렇듯 만만하지가 않다. 어머니는 노래교실에 흥미를 잃고 있었다. 노래 부르는 건 여전히 좋아하지만, 선생님이 문제였다.
어머니의 표현에 의하면 전에 계셨던 여자 선생님은 ‘조곤조곤’ 노래 잘 부르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가끔 (냄새 나는 화장실 변기에다 콜라를 부으면 좋다는 등의) 생활의 지혜를 알려주곤 했는데, 새로 온 남자 선생님은 썰렁한 농담 위주로 수업을 진행하며 ‘자고로 노래란 무조건 힘차게 찌르고 들어가야 한다’는 신념으로 노래를 가르친다고 한다. ‘눈치보지 말고 힘차게 노래를 부르라’며 어찌나 호통을 쳐대는지 열심히 소리를 지르긴 했는데 집에 돌아와서 몸살이 났다고 했다. (어머니를 닮은) 나 역시 선생님을 몹시 가리는 편이라서, 한번 선생님이 눈 밖에 나면 배움 자체에 흥미를 잃어버리는 스타일이므로 어머니의 마음이 충분히 이해가 갔다. 지나치게 자신을 믿고 지나치게 자신의 신념을 강요하는 선생님을, 상대방을 위한다는 구실로 상대방의 의견을 전혀 들어보지 않는 선생님을 나는 신뢰할 수 없다. 매주 노래를 배우면서 재미있게 노셨는데 앞으로 그 재미가 반감될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프다.
어머니의 상심에 깊이 공감하며, 한편으론 ‘아, 이번주엔 도대체 뭘 써야 하나’ 고민하며 고향집 오래된 책장을 뒤적이다가, 거기에서 최신가요 모음집을 발견했다. 중•고등학교 때 기타를 연습하기 위해 샀던 노래책인데 세월이 세월인지라 종이가 거의 낡삭고 있었다. 바스라지는 종이를 넘기다보니 어설프게 코드를 짚어가면서 그 노래들을 부르던 시절이 떠올랐다. 음악은 ‘끈’이기도 하고 ‘벽’이기도 하다. 누군가와 나를 잇는 끈이 되기도 하고, 나를 누군가로부터 막아주는 벽이 되기도 한다. 그 시절 나는 음악을 벽으로 썼다. 요즘 내게 음악은 (가끔 벽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끈일 때가 많다. 끈이든 벽이든 음악이 없으면 사는 게 퍽 힘들 것 같다. 이번주에 가장 많이 들려온 노래는 (아마도 <슈퍼스타 K>의 영향 때문이겠지) 김광석의 <먼지가 되어>였다. 그 노래도 노래책에 있었다.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난다. 생각할수록 참 슬픈 가사다. ‘먼지가 되어 날아가야지 바람에 날려 당신 곁으로.’ 음악이란 그렇게 끈이나 벽 말고 먼지가 되기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