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가 조금은 더 가까워질지도 모르겠다. 미국의 로펌회사인 셰퍼드멀린이 9월25일, 외국 로펌으로는 처음으로 서울사무소를 열었다. 금융, 해외투자, 기업인수 및 합병뿐만 아니라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개발, 제작, 인수를 맡아왔던 셰퍼드멀린은 할리우드에 진출하려는 한국의 영화제작사와 감독, 배우들에게도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사무실 개소와 함께 셰퍼드멀린의 엔터테인먼트 분야 책임변호사인 로버트 다웰도 방한했다. 미라맥스의 분할, NBC 유니버설 인수 등 미국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굵직한 변화에 참여해온 그는 올해 <할리우드 리포터>가 선정한 ‘Power Lawyer’ 중 한명이기도 하다. 그에게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업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해 물었다.
-한국에도 엔터테인먼트 전문 변호사가 있다. 하지만 업무 분야는 미국과 조금은 다를 것 같다. =미국에서는 엔터테인먼트 변호사의 역할이 한국보다 광범위하다. 그만큼 전문 변호사도 많다. 나는 엔터테인먼트, 미디어, 테크놀로지 개발 등을 담당하는 팀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 팀에만 50여명의 변호사들이 있다. 업계 내의 계약이나 자금 확보와 관련된 자문을 하고, 소송이 있을 때 변호한다. 영화, TV, 비디오 게임, 패션, 스포츠, 광고를 다루는데, 최근에는 스마트폰에 사용되는 콘텐츠 관련 계약의 자문도 맡고 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로만 한정해놓고 볼 때, 한국시장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영화로 이야기하자면, 한국 영화계는 크게 3가지 특징이 있다. 먼저 한국의 관객이다. 관객층이 넓기도 하지만, 새로운 관객이 창출되고 있다. 두 번째는 끊임없이 기술이 혁신되고 있다는 점이다. 얼리어답터들이 많고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기술도 개발되지 않나. 세 번째는 감독과 배우들이 해외로 진출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전세계를 돌아다니는 변호사로서 봤을 때, 한국의 감독과 배우들이 해외시장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점을 어떤 부분에서 느끼고 있나. =일반 관객의 입장에서는 잘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업계 종사자라면 누구나 한국영화의 영향력을 경험하고 있을 것이다. 최근에는 프랑스의 스튜디오 카날과 함께 일을 했는데, 그들도 한국 감독과 영화를 준비해온 걸로 알고 있다. 또 하나 한국 사람들이 감지하기 어려운 분야 중 하나가 동포 2세 감독들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영어로 제작되는 미국영화를 만드는 것이지만, 한국인의 문화나 정서가 녹아 있다.
-감독, 배우뿐 아니라 기업들도 할리우드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그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나. =그동안 리메이크와 관련된 질문을 많이 받았다. 미국의 영화사가 각색을 하는 과정에서 오리지널리티가 훼손되는 걸 우려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판권을 판 이후에는 관여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든 자신의 손때가 묻어나기를 원한다면 그 프로젝트에 예산을 투자해야 한다. 큰 회사의 후원을 받든지, 개인투자자들의 돈을 모으든지. 할리우드에서는 직접 감독으로 고용되더라도 자본을 투자하지 않으면 그저 영화를 만드는 구성원 중 한명에 불과하다. 할리우드에 진출하기를 원한다면, 끊임없이 발품을 팔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자신의 프로젝트에만 신경쓰다 보면 오는 기회도 지나가버린다. 광고나 뮤직비디오라도 일단 기회가 닿으면 연출하는 게 중요하다. 다양한 분야의 관계자들과 인연을 맺는 것도 마찬가지다. 공격적인 사람만이 꿈을 이룰 수 있다.
-반대로 미국의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한국에 진출하려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는가. 최근에는 이십세기 폭스가 폭스인터내셔널프로덕션을 통해 직접 한국영화를 만들겠다고 나섰다. 또 한때는 MGM이나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한국에 테마파크를 설립하려 한다는 보도도 있었다. =MGM이 테마파크를 계획하고 있을 때, 우리가 자문을 제공하기도 했다. (웃음) 폭스의 한국 진출은 사실 내 입장에서는 별로 놀랍지 않은 사례다. 디즈니도 인도와 중국, 러시아 현지에서 영화를 제작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전략적으로도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현지 산업을 알고, 현지인들의 취향을 파악하면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전략이다.
-셰퍼드멀린이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업계를 바라보면서 세운 계획이 있다면." =계획이라기보다는 우리의 태도를 말해야 할 것 같다. 우리는 고객이 감독이든 배우든 관계를 맺은 사람들과 특정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는 데에만 중점을 두지는 않는다. 장기적으로 그가 어떻게 성장하고 싶은가를 놓고 좋은 방향을 가이드할 것이다. 이제 곧 한국과 미국 영화계 사이에서 교두보 역할을 할 수 있는 법률전문가들을 더 많이 충원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