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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진의 귀를 기울이면] 길 위의 하룻밤

<577 프로젝트>

스물아홉해의 마지막 날, 해남에서 중년 남자를 만났다. 나는 순천에서 땅끝마을을 거쳐 보길도를 향하고 있었고 그는 도보로 전국일주 중이었다. 길에서 만난 그 사내와 반나절을 보내고(전망대 앞에서 인절미도 나눠 먹었다) 점심 무렵 갈림길에서 헤어졌는데 그 기억이 꽤 선명하다. 이십대의 마지막 날을 길에서 만난 사람과 함께 보낸 셈이다. 텅 빈 찜질방에서 혼자 그해의 마지막 밤을 보낸 뒤 서울행 고속버스에서 서른살의 첫날을 맞았을 때엔 막연하게, 여행이란 결국 길에 대한 감각을 깨우는 일이고 거기서 만난 사람들은 그 감각을 공유하는 공범자란 생각도 했다. <577 프로젝트>를 보는데 그 생각이 났다.

예능과 다큐멘터리를 방황하는 ‘프로젝트’는 음악 덕분에 영화쪽으로 기운다. 푸디토리움 김정범의 사운드트랙이야말로 <577 프로젝트>를 영화처럼 보이게 하는데, 정인이나 매드 소울 차일드의 진실의 보컬 외에도 특유의 감상적인 포인트를 살리는 연주곡이 돋보인다. 특히 <땅 끝 마을을 보다>의 건반, 아날로그의 질감이 인상적이다. 저도 모르게 걷고 싶다, 계속계속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마침 날도 좋으니 가벼운 운동화를 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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