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최신가요인가요’를 재미있게 보고 있다는 인사를 받는 걸 보면 이 꼭지를 챙겨보는 사람이 제법 있는 모양이다. 며칠 전에도 음악 좋아하는 소설가 윤모씨로부터 인사를 들었다. “<씨네21>을 받아들면 선배 글부터 읽어. 칼럼에 등장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글을 읽잖아”라면서 “어쩜 그렇게 놀라운 직관과 날카로운 분석이 뛰어난 통찰과 잘 버무려져 있는 거예요? 정말 대단한 글이잖아!”라고 얘기할 줄 알았는데, “음악에 대한 설명이랑 음악이 너무 다르잖아!”라고 말하는 통에 술자리 내내 상심에 빠져 있었다. 윤 작가님, 글이란 게 어쩔 수 없이 좀 과장하기도 하고 실체를 왜곡하기도 하고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내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는 소설가 윤모씨가 노래를 한곡 추천해주었다.
지난여름 (그래, 여름이 지나갔다) 비가 내릴 때마다 ‘생각의 여름’의 노래 <안녕>을 열심히 들었다고 한다. 비 오는 하루종일 <안녕>을 반복해서 들은 적도 있다고 한다. 집에 돌아와서 들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비와 잘 어울리는 노래였다. 창밖으로는 비가 쏟아지고 빗방울이 유리창을 불규칙적으로 두드리고, 저 먼 곳에서 천둥소리 같은 게 들리는 밤에 이 노래를 들었다면 마음이 싱숭생숭하고 꽤 슬펐을 것 같다. 슬퍼서 좋았을 것 같다. 그래서 가버린 여름이 아쉬운가 하면 그렇지는 않다. 이번 여름은 정말 지긋지긋했기 때문에, “네가 그렇게 비 오는 날 <안녕>을 듣길 원한다면 여름을 다시 데려와줄게”라고 누가 얘기한다면, 코를 ‘빵’ 때려줄 거다. 됐어! 됐다고!
<안녕>의 마지막 가사는 ‘보내도 가지 않는 시절이여, 안녕’이다. 다른 때 들었다면 슬픈 가사라고 생각했겠지만 올해 여름이 어찌나 지긋지긋했던지 ‘보내도 가지 않던 여름이여, 안녕’이라며 밝은 가사로 바꿔 부르곤 했다. 뒤에 이런 가사도 덧붙여보았다. 보내도 가지 않던 계절이여, 간 줄 알고 돌아보면 그 자리에 또 있던 계절이여, 안녕.
여름이 가고 가을이 되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 아니라 음악의 계절이다. 가을엔 (책 따위에) 눈을 뺏겨서는 안된다. 자연의 모든 색이 얼마나 아름다운데, 밤이 오기 전의 노을처럼 곧 겨울이 되어 색을 잃어버릴 많은 것들이 얼마나 처절하게 자기 빛을 발하고 있는데, 하늘은 얼마나 파랗고 나무들은 얼마나 선명한데, 책 같은 거 보지 말고 두눈 똑바로 뜨고 이 가을을 보아야 한다(책을 꼭 봐야겠다면 김중혁의 책을 수줍게 추천해본다. 김중혁의 책을 읽다보면 곧 하늘을 보게 될 것이라고 수줍게 주장해본다).
모든 음악은 가을이 되면 실용음악이 된다. ‘실용음악학과’라는 학과 이름을 들을 때마다 참 기묘하다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그럼 뭐야, 실용음악의 반대는 무용음악인가?) 가을이 되면 실용음악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음악은 귓속으로 들어와 가을의 모든 빛을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음악을 들으며 풍경을 바라보면 빨래 세제 광고처럼 ‘흰색은 더욱 희게, 색깔은 선명하게’ 보인다. 보내도 가지 않던 여름이 가고, 보내고 싶지 않은 가을이 왔다. 바람이 완전, 음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