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깨 위의, 커다란, 불안바람이 선선해지자 거의 조건반사적으로 우울증이 찾아왔다. 자연의 변화와 내 몸의 생체리듬이 정확히 연동되어 있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매년 가을이면 찾아오는 지랄 같은 병이라 유난하다 할 것도 없지만 매번 절망은 사무치고 상심한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진다. 특히 이번의 경우는 각별하다. 내 양어깨를 날카로운 발톱으로 움켜쥐고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 그 괴물이 함께 찾아왔기 때문이다.
괴물은 말이 없다. 스스로를 절대 설명하는 법이 없다. 다만 내가 보는 것을 함께 바라볼 뿐이다. 괴물을 돌아볼 수도 없다. 내 어깨 위에 발톱을 꽂고 석상처럼 앉아 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바라보는 것을 괴물이 똑같이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 초조하다. 괴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가끔씩 쿨럭인다. 발톱이 뼛속까지 파고든다. 나는 안다. 그가 그럴 때마다 나를 조소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 사실을 내가 알고 있다는 걸 그도 알고 있다. 그리하여 나는 그를 벗어날 수 없다.
거울을 본다. 어깨 위에 걸터앉은 괴물이 나를 응시한다. 나는 괴물이 이처럼 가깝게 느껴진 적이 몇번 있었다. 괴물은 언뜻 나를 닮았다. 그럴 때마다 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던 걸 기억한다. 이런 꼴로 살아갈 수는 없지. 나는 수만번도 나직이 되뇐다. 그러나 그는 이럴 때면 조용히 나를 응시할 뿐이다. 나는 더이상 참을 수 없어 머리를 쥐어뜯으며 자해라도 할 태세를 취해 보인다. 잠잠해진 녀석이 의뭉스레 눈을 굴리는 걸 난 보지 않고도 알 수 있다.
어제는 아침 8시15분에 작업실을 나왔다. 706번 버스를 타러 횡단보도를 건넜다. 맞은편에서 걸어오던 구청 직원이 내 어깨 뒤의 괴물을 흘깃 쳐다봤다. 그가 놀라 서류가방에 든 몇장의 A4지를 떨어뜨렸던가? 반 시간을 기다려도 706번은 오지 않았다. 아마 영원히 오지 않으리라. 나는 엉뚱한 곳에서 기다렸다. 택시를 잡아탔다. 택시가 선 곳에는 참으로 약한 두 마리의 뱀이 똬리를 틀고 있다. 내게 팸플릿을 건넨다. 예수 믿으세요. 지옥 안 가려면. 지옥은 무슨… 나는 화를 낸다. 괴물이 나를 내려다보고 또 한번 쿨럭인다.
광장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찼다. 나는 그 사이를 길 잃은 낙타처럼 횡단한다. 내 어깨에 올라탄 괴물이 몸을 세차게 흔들며 울부짖는다. 나는 너무나 두려워 똥을 떨군다. 광장의 사람들이 내 어깨 위의 괴물을 알아차릴까봐 나는 속이 타들어간다. 마침내 선하게 생긴 작자가 내 앞길을 가로막는다. 그가 묻는다. 도대체 그 괴물을 어깨에 짊어지고 어디로 가고 있는 거요? 볼썽사납게시리. 아니 이게 보인다는 말이오? 광장의 모든 사람들이 일제히 나를 돌아보며 수군거린다.
내 어깨 위의 괴물은 미래로부터 왔다. 나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 매번 착각한다. 이것이 나의 약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