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는 경로는 다양하다. 얼굴이나 표정이 마음에 들 수도 있고, 몸매 때문일 수도 있고, 쉽게 알아차리기 힘든 사소한 동작에 (예를 들면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 손목의 각도가 아름답다든지) 매력을 느낄 수도 있다. 나의 경우는 ‘단어’와 ‘목소리’에 가장 민감한 것 같다.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어떤 단어를 사용해서 어떻게 이야기를 전개시키는가에 따라 호감도가 달라진다. 좋은 단어로 빚어진 경쾌한 이야기를 듣고 나면 말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좋게 느껴진다.
좋은 목소리는 타고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좋은 목청을 타고날 수는 있지만 좋은 목소리는 순전히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싶다.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수많은 대화에서 자신만의 단어를 골라내는 시간이 필요하고, 자신만의 음역대를 찾아가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인간을 어딘가에 비유하는 걸 무척 싫어하지만 목소리에 대해 할 말이 많지 않은 관계로 인간을 (내 멋대로 지금 눈앞에 있는) 도자기에 비유해보자면, (글쓰기 팁 하나, 비유를 하면 분량이 순식간에 늘어납니다… 만, 글을 망칠 수도 있습니다) 도자기의 표면 굴곡은 외모에, 도자기의 내부 굴곡은 목소리에 비유할 수 있겠다. 세월이라는 원심력을 이용하여 뭉툭한 외모를 미끈하게 만들어나가듯 보이지 않는 내면의 목소리 역시 세월의 원심력으로 다듬어나가야 한다. 외모와 목소리의 두께가 일정해야 하고, 모든 면이 고루고루 균형잡혀 있어야 한다. 나이가 더 들게 되면, 쓸데없는 말을 다 버리고 (쓸데없는 비유도 하지 않고) 꼭 필요한 단어와 그 단어를 정확하게 발음할 수 있는 목소리만 남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다큐멘터리에서 본 제주도 할머니의 단어 선택이 기억났다. 누군가를 설명하는 장면에서 “저 사람은 정신도 좋고, 성질도 좋아”라고 이야기하는데 그 단어와 목소리가 귀를 거치지 않고 직접 가슴으로 전해져왔다. 돌직구라고 해야 할까, 할머니의 목소리가 참 좋았다.
얼마 전 방심하고 이어폰으로 음악을 듣다가 한희정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노래는 역시 방심하고 들어야 맛!). <이 노래를 부탁해>라는 곡이었는데 다른 악기가 전혀 등장하지 않고, 한희정의 (여러 가지) 목소리로만 이뤄진 노래였다. 어디선가 새소리처럼 작은 목소리가 날아와 노래를 시작하더니 시간이 흐를수록 한겹 한겹 다양한 목소리가 땅 위에 쌓였다. 목소리는 풍경이 되고 빛이 되고 그늘이 되고 리듬이 되고 이야기가 되었다. 아, 그래, 이런 게 목소리였지. 이렇게 아름답고 슬픈 것이었지. 한희정의 목소리를 처음 듣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 노래를 부탁해>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을 위한’ 여성 음악인들의 컴필레이션 앨범 ≪이야기해 주세요≫에 들어 있는 곡인데, 전곡을 들어보길 권한다. 이 앨범에도 돌직구 같은 이야기가 수두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