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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은의 TVIEW] 혼자 보기는 아깝다만

독한 볼거리, 채널A의 <박종진의 쾌도난마>

요즘 나의 사소하지만 꾸준한 궁금증은 수도권 중산층 60대 전후 남성 퇴직자들의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 사랑의 근원에 대한 것이다. 물론 여기서 ‘중산층’이란 언론에서 말하는 거창한 기준이 아니라 대략 서울 외곽 중소형 아파트 정도에 거주하는 나와 몇몇 친구들(의 부모님)을 기준으로 한다. 어쨌든 초등학교 동창과 만나도 대학교 동기와 만나도 심지어 결혼해 가끔 친정에 들르는 친구를 만나도 공통된 증언은 ‘아빠가 항상 종편 채널만 틀어놓으셔서 TV를 볼 수 없다’이니 이는 마치 ‘24시간 뉴스채널’이라는 야심찬 슬로건과 함께 등장했던 YTN 개국 당시 종일 채널을 고정하시던 할아버지의 모습과 다름없지 않은가. 물론 이제 우리 아버지들이 ‘아저씨’보다 ‘할아버지’에 가까우신 데다, 딸들의 평소 추측으로도 인터넷 게시판 어딘가에서 “빨갱이 놈들”을 향해 훈계와 호통을 시전하고 계실 듯한 ‘보수논객’이셨음을 생각하면 결코 놀라운 일은 아니다. 다만 일부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을 제외하면 대부분 재미와 완성도가 크게 떨어지는 종편 프로그램을 무슨 재미로? 나는 그것이 알고 싶었다.

채널A의 ‘황상민 대첩’은 그 첫 번째 실마리였다. 활발한 저술과 방송 활동으로 대중적 인기가 높았지만 얼마 전 “김연아의 교생실습은 쇼” 발언과 지나치게 권위적인 후속 대처 때문에 구설에 올랐던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가 패널로 출연 중인 <박종진의 쾌도난마>에서 말 그대로 칼을 휘두른 것이다. 안철수 서울대 교육과학기술원 원장의 책 발간과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 출연으로 정치권이 한창 달아오른 시점에 박종진 앵커가 “대선주자로 검증받으려면 시사 프로그램에 나와야 하는 게 아니냐”며 짐짓 비판적인 운을 띄우자 <힐링캠프…>와 <…쾌도난마>의 시청률을 비교하며 “그렇게 전형적이고 구태의연하고 판에 박힌 정치 프레임으로 보고 있다는 게 이 프로그램의 비극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시청률이 1%밖에 안 나오죠!”라며 일갈하는 그의 모습을 편집한 영상은 채널A 개국 이래 체감 반응 최고점을 기록하며 유튜브에서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아쉽게도 지금은 다 삭제되고 채널A에서 올려놓은 풀 영상만 볼 수 있지만.

얼마 뒤 받은 보도자료 메일은 한층 더 흥미진진했다. 제목은 “역술가 자운 ‘안철수는 대통령 관상이 아니다?’” 드물게도 촬영 스크립트 전체 내용이 담긴 이 가치 높은 문서에는 이를테면 “박종진: (박근혜 후보가) 여성이니까 모성애를 가지고 있는데, 결혼을 안 하신 부분은 단점입니까? 장점입니까? / 자운: 단점이자 장점입니다. 박종진: 이분(안철수 원장)은 박사를 하고 교수를 해서 국익을 위해 이바지해야 하는 사람인데 정치로 오면 뭔가 아쉬움이 있다, 그런 이야기죠? / 자운: 그렇습니다. 관상학적으로 아주 호인상입니다. (중략) 밸런스에서 부족함이 있어 국민들을 다 끌어안고 이끌기에는 부족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등 대한민국의 미래를 좌우할 만한 위키리크스급 코미디가 가득했다.

즉 이쯤 되니 혼자 보긴 아까워진 <…쾌도난마>의 악마적 재미는 주부 대상 아침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중후한 분위기의 박종진 앵커가 황당하고 비논리적인 기획, 통제 불가능한 패널과의 만남 속에서도 애써 위엄과 여유를 잃지 않으려는 고군분투의 과정에 있다. 특히 김구라 못지않은 독설과 윤종신을 뛰어넘는 깐족거림을 부스터로 장착한 황상민 교수가 ‘교양있고 점잖은 성인 남성들’간에 학습되는 대화의 매너를 깡그리 무시한 채 박 앵커를 들었다 놨다 하는 순간은 뉴스쇼의 외피를 쓴 풍자코미디 쇼처럼 기이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이러다 진짜 시청률 10% 달성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과 함께, <…쾌도난마> 시청자 게시판에 줄 잇고 있는 “좌파인사 황상민 퇴출하라!” 등의 글 목록에 혹시 낯익은 이름 석자가 떠 있지는 않은지 슬쩍 확인해보았다는 사실은 아버지께 물론 비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