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서둘러 원주에 다녀와야 한다. 근데 비가 장난이 아니다. 지난해 이맘때 고속도로에서 폭우를 만나 혼쭐이 난 경험이 있어서 더 걱정이 된다. 그래, 오늘만큼은 고속버스를 이용하자. 그만큼 날씨가 더럽다. 우선 네이버 지도 검색에 목적지 주소와 우리집 주소를 친다. 흠, 10초도 걸리지 않는다. 우선 버스를 타고 광주시외버스터미널에 가서 원주행 고속버스를 타라는 지침을 받는다. “네, 알겠습니다.” 아무 의심 없이 네이버가 하라는 대로 했다. 참 편한 세상이다. 어라, 그런데 원주 가는 버스가 없단다. 그럴 리가. 아침 9시에 한대 있었는데 방금 갔단다. 게다가 원주행은 그거 딱 한대뿐. 황당하긴 했지만 화가 나지는 않았다. 누구한테 화를 낸단 말인가? 내가 한 짓인데. 믿음의 체계가 그렇고 디지털 세상이라는 게 그렇다. 그걸 지나치게 믿고 신뢰한 자들을 수시로 바보로 만든다. 덕분에 광주에서 이천터미널로 다시 원주로 얼마나 돌았던지 100km도 채 안되는 구간을 무려 3시간 반이나 걸려 도착했다.
우여곡절 끝에 원주에서 일을 보고 강남역에 무사히 도착했다. 거의 오후 5시 무렵이다. 집에 가면 아마도 6시쯤? 버스에 탄다. 오늘 따라 왜 이리 집중이 잘되는지, 책이 쭉쭉 읽힌다. 이제 슬슬 도착할 때다. 어럽쇼! 처음 보는 풍경. 아무래도 잘못 탄 모양이다. 다시 서현역 쪽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거기서 다시 우리집 가는 버스를 타자 마음먹는다. 어라, 근데 이 버스 서현역에 안 가는 모양이다. 그뿐 아니라 곧바로 내곡로를 질주한다. 설마? 맞다. 다시 강남으로 향하고 있다. 으, 거의 녹초가 된 몸으로 방금 고속도로를 타고 강남역에서 분당으로 넘어왔는데 또다시 내곡로를 타고 강남으로 넘어가는 심정을 누가 알까? 한번 들어서면 중간에 내릴 곳도 없는 고속화도로다. 에라, 이 병신아, 소리 지르고 싶지만 창피해서 그럴 수도 없다. “오, 날 소리없이 울게 하소서.” 무슨 빗속의 여인도 아니고. 벌써 밤 8시. 아예 웃음이 나온다. 그래 뭐, 이런 바보짓이 어디 한두번인가?
그 바보가 한번은 부다페스트에서 기차를 타고 슬로베니아 국경을 넘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기차에 오른 직후에야 알았다. 여권을 집에 두고 왔다는 걸. 그런데도 이상하게 갈 데까지 가보고 싶었다. 덕분에 아주 난리가 났다. 슬로베니아 국경 근처에서 인근 경찰서로 강제이송된 뒤 이 바보의 구성 성분을 확인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 영어도 잘 못하는 슬로베니아 경찰들이 이리저리 국제전화를 걸며 얼마나 진땀을 흘리던지…. 가까스로 얘는 그냥 ‘멍청이’라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귀찮다는 듯 가장 가까운 헝가리 국경도시로 나를 내동댕이쳤다. 그 법석을 다 치르고 생각지도 못한 그 낯선 도시에서 보낸 밤은 기이할 정도로 평화롭고 썰렁해서 짐 자무시가 찍은 초현실적인 로드무비의 한 챕터처럼 기억된다.
이쯤 되면 나라는 인간이 얼마나 무모할 정도로 어리석은지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기심, 게으름, 변덕, 나약함, 자만심 등 그 밖에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결점들을 단박에 압도하는 이 빈약한 두뇌. 비록 마음 한구석은 쓰리지만 웃는다. 그게 인간이고 인생이라고 쓴웃음으로 긍정하며. 그동안 틈틈이 몽테뉴를 읽으며 낄낄거린 덕이지 싶다. 그래도 여하튼 웃을 수 있다는 거. 아예 애정을 갖고 지켜볼까도 싶다. 이 바보짓의 끝은 과연 어디인지. 인류에 대한 호기심과 동정심을 갖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