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대전 때 미군 특수부대가 베를린 시내에 잠입해 히틀러를 납치하려 했다면 독일국민들은 박수로 그들을 맞았을까? 93년 10월3일 아이디드 각료 납치작전은 그런 것이다. 분명 아이디드는 독재자였고 기아에 허덕이는 인민들로부터 식량을 뺏는 기생충 같은 권력자였지만 그를 따르는 소말리아인들은 많았다. 민병대는 미군을 증오했고 아이디드는 유엔과 미국이 소말리아를 식민지로 만들고 이슬람교도를 기독교도로 개종시키려 한다고 선전했다. 소말리아 민병대의 저항을 각오한 미군들이 예상 못한 것은 떼지어 몰려나온 모가디슈 시민들이었던 것이다.
오래 전부터 소말리아는 내전상태였다. 서로 다른 부족들은 서로를 증오했고 권력을 독점하려 했다. 유엔은 내전으로 기아에 허덕이는 소말리아인들을 살리기 위해 식량원조에 나섰고 종족 분쟁의 중재안을 내놓았다. 미국과 유엔은 대학살로 치닫는 소말리아 사태를 진정시키고자 정말 ‘선한’ 의도를 갖고 개입했던 것이다. 미군이 주둔하면서 한 차례 진정기미를 보였던 소말리아 내전은 미군 철수와 함께 다시 불거져 유엔군 24명이 아이디드군에 살해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미국은 다시 델파포스와 특공대를 파병, 아이디드 체포작전에 나선다. 10월3일 그들은 아이디드의 각료들의 회합 정보를 듣고 납치계획을 세운다. 1시간 안에 끝날 것 같던 작전은 블랙호크의 격추와 함께 어긋난다. 영화는 보우든의 책에 묘사된 것과 거의 같지만 몇몇 부분은 의도적으로 축소하거나 생략했다. 아이디드의 민병대가 부녀자를 방패처럼 사용했던 사실, 그래서 민간인 사상자가 엄청났다는 사실, 무고한 민간인이 미군의 총을 맞고 쓰러지자 소말리아인들이 총을 들고 거리로 나선 사실 등이 그렇다. 전투가 마무리된 10월4일 새벽까지 클린턴 대통령은 사태를 모르고 있었다. 당시 워싱턴은 러시아에서 옐친이 우익쿠데타를 진압하고 있다는 사실에 더 신경을 썼고 기자들도 소말리아에서 무슨 일이 진행되는지 알지 못했다. 클린턴 행정부는 전투 다음날 소말리아에 대한 군사작전을 종결시켰다. 미군은 철수했고 소말리아는 내전을 지속했다. 베트남전의 악몽이 미국을 겁먹게 만든 것이다. 지난해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습은 소말리아 사태에서 교훈을 얻은 점이 있을 것이다. 그게 모가디슈 전투를 제대로 해석한 교훈인지는 모르겠지만. ▶ <블랙 호크 다운>, 전쟁영화의 새로운 걸작이 탄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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