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중계가 여전히 못마땅하다. 이렇게 채널이 많아졌는데, 어째서 한국과 관련된 경기만 계속 틀어주는지 화가 날 때도 있다. 육상 경기는 도대체 왜 안 보여주는 거야! 좋아하는 육상 경기를 많이 보려면 뛰어난 한국 육상 선수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알려주어 한국 육상에 대한 지원과 관심을 이끌어내려는 방송사의 속 깊은 배려인가. (설마!)
내가 원하는 올림픽 중계는, 경비실의 CCTV 메인 화면 같은 것이다. 분할된 화면 속에 여러 종목의 경기가 벌어지고 있고, 내가 원하는 화면을 클릭하면 그 종목의 중계를 볼 수 있는 것이다. 해설 같은 건 필요없고 그냥 경기를 볼 수만 있으면 된다. (무식하게 말해서) 종목당 CCTV 하나씩 설치하면 간단하잖아요!
대회 마지막 전날, 남자 5000m 결승과 남자 4X100m 계주 결승과 여자 높이뛰기 결승을 볼 수 있어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한국 선수들이 없으니 마음 편하게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그들의 동작 하나하나에, 아름다운 몸에 집중할 수 있었다. 5000m 결승에서 영국의 모하메드 파라가 예상을 깨고 막판 스퍼트를 할 때, 얼마나 짜릿했는지 모른다. 편안한 소파에 앉아 맥주를 홀짝거리면서 조용히 응원하고 있으면,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올림픽 정신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선수는 트랙과 필드에서 최선을 다하고, 관중은 승부에 집착하지 않고, 소파에서 최선을 다해 마신다.
경기장에 가서도 응원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 역시 응원하는 팀이 있고, 결과나 과정이 아쉬울 때도 있지만 크게 흥분하는 법은 없다. 그래가지고서야 스포츠를 보는 재미가 없잖아요, 라고 말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 스타일대로 정말 재미있게 스포츠를 즐기고 있다. 선수들의 환한 표정을 보는 게 좋고, 심판들의 당황스러운 몸짓을 보는 게 좋고,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 않은 플레이를 해내는 선수들의 우아한 동작을 보는 게 좋다. 그건 승부와 크게 상관없는 순간이지만, 그런 순간들이 모여 하나의 게임을 완성하고, 한 시즌을 만들고, 스포츠의 역사를 만드는 것이다.
경기장에서 흥겹게 응원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좋아한다. 함께 힘을 모아 선수들의 이름을 부르고, 목이 터져라 승리를 갈구하는 모습을 보는 걸 좋아한다. 그렇게 자신들의 스트레스도 날려버리는 거겠지.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듣는 순간, 앞으로 수많은 경기장에서 이 노래가 울려퍼지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응원단들이 참 좋아할 만한 비트이고, 치어리더들이 참 좋아할 만한 안무다. <챔피언>처럼 노골적인 응원 가사는 없지만 ‘오빤 00스타일’이라는 빈칸에다 자신이 좋아하는 팀을 넣는다면 스포츠 응원에 딱 어울릴 것 같다.
누군가 2012년의 여름에 대해 묻는다면, 아마 많은 사람이 올림픽과 열대야와 <강남스타일>을 떠올릴 것이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2012년 여름의 노래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