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올림픽이 폐막했다. 다음 영화 시나리오를 쓰느라 마음이 분주한 탓에 모든 경기를 다 보지는 못했지만 좋아하는 축구와 육상 경기는 잠을 쫓으며 챙겨봤다. 한국 축구대표팀이 동메달을 따는 것도 가슴 졸이며 지켜봤고 우사인 볼트의 3관왕 세리머니도 유쾌했다. 남아공의 의족 선수 피스토리우스가 1600m 계주 결선에서 역주하는 장면은 참으로 뭉클했고 개인적으로 이번 올림픽 최고의 장면이 아닐까 싶었다.
폐막식 역시 인상적이었다. 개막식에서는 롤링 스톤스, 섹스 피스톨스, 폴 매카트니의 음악이 나오더니 폐막식에서는 아예 영국의 전설적인 팝가수들이 모두 등장해 눈과 귀를 황홀하게 했다. 존 레넌과 프레디 머큐리가 되살아났고 조지 마이클, 스파이스 걸스, 테이크 댓, 타이오 크루즈, 뮤즈, 오아시스, 비디 아이를 거쳐 더 후가 피날레를 장식했다. 이보다 더 완벽한 라인업을 갖춘 콘서트는 다시 찾아오기 힘들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전세계인을 사로잡은 자신들의 대중음악에 대한 영국인의 긍지에 진심으로 질투를 느꼈다.
경기도 흥미진진했고 폐막식도 즐거웠지만 내게 이번 올림픽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개막식이었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내 20대 후반을 뒤흔들어놓으며 영화에 대한 맹렬한 꿈을 꾸게 했던 <트레인스포팅>의 감독 대니 보일이 총연출을 맡은 런던올림픽 개막식은 정의로웠고 아름다웠다. 셰익스피어와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가 흘러나왔고, 산업혁명을 상징하는 굴뚝에서부터 영국의 오늘을 있게 한 주역으로 여성과 노동자들의 건실한 땀과 무상의료를 상징하는 병원 침대가 등장했다. 가장 놀라웠던 건 런던올림픽 주경기장을 지었던 500여명의 건설노동자를 대형 서치라이트가 비추는 장면이었다. 벽돌 하나부터 손수 올림픽을 준비했던 노동자들의 때에 전 작업복을 숨기고 소외시키는 것이 아니라 축제의 호스트로 당당히 내세우고 박수받게 하는 그 태도가 머리카락이 쭈뼛 설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집도 잘살고 주먹도 잘 쓰는 학교 일진의 으스대는 생일잔치 같았던 장이모 감독의 수천억원짜리 베이징올림픽 개막식과 비교했을 때 이 얼마나 성숙하고 아름다운 태도인가. 지구 최대의 상업적인 이벤트인 올림픽 개막식에서조차 연출자의 철학과 비전에 따라 이렇듯 감동적인 노동의 가치가 메아리칠 수도 있는 것이다.
런던올림픽 개막식에서 영국 노동자들이 역사의 주체이자 당대의 원동력으로 존경과 신뢰를 즐기고 있을 바로 그 시간, 한국의 안산에서는 철야농성을 벌이던 자동차 부품업체 SJM 노동자들이 사쪽이 고용한 용역업체의 살인적인 폭력으로 피를 줄줄 흘리며 끌려나가고 있었다. 경찰 3개 중대가 회사 밖 담장에 대기하고 있었지만 헬멧과 몽둥이, 방패로 중무장한 300명의 용역업체 직원들은 누구의 제지도 받지 않고 120명의 노동자들을 극한의 공포로 몰아넣었다. 35명이 부상당했고 이중 12명은 중상을 입고 현재 병원에서 치료 중이다. 존경은커녕 인간의 기본권조차 무시당하는 게 우리 노동자들의 현실이다. 한국의 노동자들이여, 당신들은 어찌 이리도 못난 조국을 두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