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8월30일까지 장소: 한국국제교류재단 문화센터 갤러리 문의: www.kf.or.kr
“영화를 더 좋아한다. 고양이를 더 좋아한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해 “실이 꿰어진 바늘을 갖는 것을 더 좋아한다. 초록색을 더 좋아한다”라고 이어지는 한편의 시 <일말의 가능성>. 내게 폴란드라는 나라의 이미지는 온전히 시를 쓴 폴란드 시인 비스라바 심보르스카가 만들었다 해도 틀리지 않다. 막연하게 한번쯤 가보고 싶다는 마음을 갖기에도 멀게 느껴지던 나라 폴란드, 이곳에서 건너온 디자인은 어딘가 이 시인의 시를 닮았다. 간결하고 솔직하게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데리고 사는 단출한 삶의 모습들.
지금 서울 중구 빌딩 사이에 위치한 한국국제교류재단 문화센터 갤러리에 들어서면 폴란드의 젊은 디자이너들의 작업을 만날 수 있다. 북유럽 디자인이나 일본, 영미의 디자인처럼 명망있는 디자이너도, 유복한 취향도 눈에 띄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폴란드 디자인이 무엇인지 더 궁금해진다. 마치 답을 찾기 힘든 퀴즈에 정신을 빼앗긴 것처럼 말이다. 전시는 간결하고 소박해 보이는 디자인 결과물들을 전시장에 올려놓는다. 붉은 털실로 제작한 카펫(아제 디자인)에는 아무 무늬 없이 복슬복슬한 실뭉치가 따라 나온다. 평소에는 얇은 상태를 유지하다가 필요한 경우 공기를 주입해 사용하는 소파(디자인 그룹 말라포르)는 적재적소에 필요한 재료와 적합한 사용방식을 찾아 사물을 제작하는 폴란드 디자인의 매력을 보여준다. 폴란드의 젊은 디자이너들은 재활용에 특히 적극적이며 나무, 펠트와 같은 값싸고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를 선호한다. 공장에서 대량생산하는 디자인보다는 전통 공예의 영향력이 강하게 남아 있어 지역 장인들의 도움을 받아 디자인 작업을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제작방식에 기인하기 때문에 사물들의 미감은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인공미가 없다.
폴란드 디자인을 한마디로 설명한다면? 전시기획자는 애당초 폴란드 디자인의 고유한 특성은 “있다고 하기도 없다고 하기도 힘들다”고 말한다. 대신 폴란드 문화 강좌, 영화 상영 등 다양한 행사를 마련했다. 8월21일에는 60~80년대 개인의 옷차림을 통해 폴란드 사회를 들여다보는 다큐멘터리 <폴리티컬 드레스>를 상영하고 25일에는 폴란드 그래픽디자인에 관한 강의가 열린다. 유난히 규모있는 북유럽 디자인 전시가 성황을 이뤘던 올 상반기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투박해 보이는 폴란드 디자인의 모습은 청량하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