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의 성격이 모두 다르다는 게 놀라울 때가 있다. 각각 고유한 퇴적층이 되어 유일한 삶과 생각들을 쌓아올리며 자신만의 성격을 완성했을 테니 성격이 다른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인데, 문득 생각하면 놀랍다. 동물도 그럴까. 같은 동물이라고 해도 태어난 시간이 다르고, 자라온 동네가 다르니 자신만의 성격 같은 게 있지 않을까. 수많은 동물애니메이션 때문에 동물의 입장을 제대로 상상하기 힘들지만 어쩐지 그럴 것 같다. 같은 종의 고양이라도, 같은 종의 개라도, 성격과 취향과 철학이 다를 것 같다.
‘한번 정해진 성격은 영원히 그 사람 성격’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내 생각엔 (우리가 무슨 해병대도 아니고) 성격 역시 변하는 것 같다. 성격은 고쳐야지 마음먹는다고 되는 일은 아닌 것 같고, 큰일을 겪거나 중요한 사건에 맞닥뜨리고 난 뒤 조금씩 변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때는 알지 못하더라도 어느 순간 되돌아보면, ‘아, 그때 그래서 내가 변한 거로군’ 하고 깨닫게 된다.
내 경우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사이에 커다란 성격의 변화가 있었다. 중학교 1학년 때는 심각한 모범생이었고, 2학년 때는 적당한 모범생이었고, 3학년 때는 ‘모범생이 망해도 3년은 간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으며 한때 모범생이었던 걸 자랑스러워하던 반모범생이었는데, 그만 고등학교 입학시험에 떨어지고 말았다. 시험에 떨어지고 앞으로 어찌 살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후기 시험을 거쳐 ‘종합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됐는데, 그때가 내게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의 시기였다. 중학교 시절까지는 나를 중심으로 모든 세계가 움직인다고 생각했는데, 덜컥 시련에 부닥치고 나니 ‘나 따위’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부터 공부는 적당히 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기 시작했다. 내성적이었던 성격이 조금씩 외향적으로 바뀌었고, 방 안에 있는 것보다 밖에 나가서 운동하는 걸 더 좋아하게 됐다. 모든 게 나를 중심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지구였다가, 천체를 항해하는 수많은 행성 중 하나인 지구가 된 것이다. 그때 시험에 떨어지지 않았다면, 나는 훨씬 더 오랫동안 천동설을 믿고 있었을 것이다.
야광토끼의 1집 ≪Seoulight≫를 깊이 사랑한 사람으로서 새로운 앨범 발매 소식을 듣고 조마조마했다. 야광토끼의 (앨범) 성격이 꽤 많이 바뀌었다는 소식을 미리 들어서(“야광토끼인데, 밤에 안 보이게 된 거 아냐?”), ‘소포모어 징크스’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어서 불안불안했다. 첫곡 <비눗방울>을 들으며 안심했고, 두 번째 곡 <Plastic Heart>를 들으며 변화의 조짐에 감탄했고, 세 번째 곡과 네 번째 곡 <왕자님>과 <첫사랑>을 들으며 달라진 모습에 환호했다. 그사이 야광토끼에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잘 모르겠지만 (음악적 변화가 뮤지션의 변화는 아닐 수도 있지만) 완전히 다른 세계를 이토록 매력적으로 그려냈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