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대학원 석사 학위 논문을 쓰면서 영화를 경제학적인 상품으로 가정하고 공공재와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을 설정했다. 15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솔직히 자신없는 경제학 이론을 가지고 영화 얘기를 해보려고 하는 건 조금 무리일 수도 있겠지만(특히 경제학을 전공한 관계자분들은 부디 너그러운 마음으로 읽어주시길 바랄 뿐이다) 현재의 예술영화의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나름의 비책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영화가 공공재적 특성을 지닌다는 의미는 즉, 비경합성을 띤다는 것이다. A라는 사람이 그 영화를 본다고 해서 B, C가 그 영화를 볼 수 없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보고 싶은 영화의 좌석이 이미 매진이라면 다른 시간에 보든지, 딴 영화를 봐야 한다. 제한된 의미에서 비경합성을 가졌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하지만 똑똑한 판매자들은 영화를 최대한 많은 장소, 많은 시간에 상영함으로써 비경합성을 극대화하려고 할 것이다. 그래서 폭넓은 배급방식을 선호한다.
한계효용 체감의 법칙은 상품의 소비가 증가함에 따라 추가 단위의 소비가 주는 만족도(효용)는 체감한다는 것이다. 즉, 같은 영화를 처음 볼 때와 두 번째, 세 번째 볼 때의 만족도는 처음 그 영화를 봤을 때의 만족도보다 낮아진다는 것인데, 이것은 소비자의 주관적 만족을 수치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는 효용측정가능성을 전제하고 있다. 따라서 같은 비용을 지불하면서 반복 관람을 하는 관객은 이론상 잘못된 관객이다.
여기서 나는 경제학 이론으로 모든 영화관람 행위를 설명하려는 일반화의 오류에 빠져버렸다. 사실 현재 예술영화를 관람하는 관객에게는 경합성과 한계효용 체감이 아닌 체증의 법칙이 필요한 시점이다. 대부분의 관객은 집 근처 가까운 곳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싶어 한다. 하지만 제한된 관객만 관람하는 예술영화를 모든 극장에서 상영하는 건 불가능하다. 때로 경합성은 그 영화의 가치를 상승시키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제한된 상영을 하는 영화의 가치와 모든 극장에서 상영되는 영화의 가치가 동일하게 책정된 것 자체가 수정되어야 한다. 또한 좋은 영화는 두번, 세번 볼수록 그 영화의 효용이 증대될 수도 있다. 물론 여기서 좋은 영화라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기 때문에 이 역시 논리적인 모순이 있음을 100% 인정한다.
여전히 우리는 모든 영화를 동일한 요금으로 관람하고 있다. 물론 극장마다, 또 영화의 기술적 포맷에 따라 조금씩 가격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예전에 일본에서 멀티플렉스 극장보다 작은 예술영화관의 요금이 더 비싼 걸 보고 깜짝 놀랐다. 관객 역시 소수의 마니아를 위해 상영되는 영화의 요금이 일반 상업영화보다 비싼 것에 크게 거부감을 보이지 않았다. 우리나라도 예술영화 티켓가격이 멀티플렉스에서 상영하는 일반영화 가격보다 비싸지는 날이 올까? 경제학적 논리로는 볼 때는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이 무더운 여름 그런 날이 곧 오리라 상상을 하면서 더위를 이겨본다. 여전히 난 경제논리가 빈약한 예술영화 제작자이자 수입업자이기 때문에….
현재 일본의 극장관람료는 성인 1명당 1800엔(8월9일 현재 환율로는 약 2만5800원)이다. 현장에서 직접 표를 구매하는 경우의 금액이다. 멀티플렉스든, 예술영화전용관이든 이 금액은 동일하다. 단 예술영화전용관에 비해 멀티플렉스의 할인정책이 더 넓게 적용되고 있다. 고정수 <씨네21> 일본 통신원에 따르면, “수요일마다 있는 레이디스 데이 할인(여성전용), 60살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실버 할인 등이 있으며 인터넷으로 예매할 경우 1300엔에 표를 구할 수도 있다”. 일본의 예술영화전용관은 이러한 할인정책을 적용하는 사례가 드물다고. 인터넷 예매에 대응하지 않는 곳이 많기 때문에 대부분 직접 극장에 가서 표를 구매해야 볼 수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일본의 관객은 예술영화를 비싼 가격에 보는 게 아니라, 멀티플렉스 영화를 싸게 보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러한 차이를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마인드가 눈에 띄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