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된 수술이 끝난 뒤 땀으로 젖은 이마에 착 달라붙은 머리카락. 처진 눈썹 사이의 미간에 신중함을 담아 환자의 예후를 살피는, 피로에 전 중년 남자의 표정과 동작 하나하나를 염치도 잊은 채 기웃거리는 중이다. 수술을 마친 의사에겐 육체피로로 설명하기 부족한 묘한 아우라가 있는데 이를테면 자기희생으로 내면의 충실함을 느끼거나, 만족스런 수술을 마치고 난 뒤 높은 긍지에서 배어나는 섹시함 같은 것. MBC 드라마 <골든타임>에서 중증외상을 다루는 최인혁 선생(이성민) 역시 대단히 매력적인데 그게, 충족감과는 사뭇 다르다.
극중 세중병원 응급실에서는 환자가 들어오면 각 과에 콜을 하고 어느 선생에게 입원장을 내야 하는지 책임 소재를 가리며 절차에 따라 움직이는 종합병원의 체계가 세심하게 그려진다. 베드와 인력이 한정되어 있으니 지체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경계가 애매하고 다발적인 문제를 가진 환자가 들어오기도 한다. 여기서 최인혁은 시스템이 수용하지 못하는 환자의 생명을 1차 수술로 유지하고 (종종 배를 열어둔 채로) 각 과의 2차 수술로 연결하는 역할을 맡는다. 분과 과장들은 ‘경계도 영역도 없이’ 초응급환자의 수술을 해치우는 그가 몹시 불편하다. 최인혁을 기계에 비유하자면, 범용성과 빠른 처리속도를 지녔는데 그렇다고 전체의 효율을 위해 봉사하는 존재는 아닌 셈. 기술과 장비, 인력이 집중된 종합병원에서만 살릴 수 있는 중증외상환자가 아이러니하게도 체계와 분업을 이룬 시스템에 수용되지 못하고 응급실이나 이송과정에서 숨이 끊어지는 사태를 ‘사생활도 없이’ 막아오던 최인혁의 꿈은 시스템을 갱신하는 것이다. 중증외상환자를 전담하는 트라우마 센터 하나 세우면 끝나는 게 아니라 각 병원을 헬기로 잇는 네트워크 구축과 그것의 안정적인 지속을 바란다.
종합병원 각 분과의 위상과 관계를 캐릭터로 잡아 연기하는 일반외과, 정형외과, 응급의학과, 신경외과 각 과 과장급들이 종종 책임의 범위를 놓고 지리멸렬한 공방전을 벌이는 것도 효율에 가려진 종합병원의 맹점을 지적한다. 그럼 누구든 책임을 장담한다면 해결될까?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1차 수술을 마치고 응급실 베드에 누워 있는 신원 미상의 중국집 배달원 환자가 선행으로 대통령 표창까지 받은 사실이 밝혀지자 일반외과과장은 책임자를 자임하고 나선다. 이름을 알리기 위한 기회로 삼은 것까지는 좋다. 그가 최인혁이 집도한 1차 수술에 참가해 절단해놓은 장기 봉합순서를 익혀뒀던 응급실 소속 인턴 민우(이선균)와 재인(황정음)의 수술 참관을 거절하는 장면은 공을 독점하겠다는 욕심이 의사의 판단을 흐리는 과정을 비춘다. 자신의 커리어나 명성을 걸고 책임을 지는 행위. 이건 정치의 영역이다.
최인혁은 피가 모자란 수술장에서 배달원의 몸을 열고 말한다. “지금은 좋은 것과 나쁜 것 가운데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쁜 것과 덜 나쁜 것 가운데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다. 의사에게는 가장 괴로운 일이지. 이게 디시전(판단)이다.” 그리고 이게 그가 감당하는 의사로서의 책임이다. 시스템의 허점에서 최악의 환자들을 마주해온 그의 말에서 숭고한 자기희생이나 의술의 정점에 서고 싶은 욕망을 읽을 순 없다. 더 나쁜 것과 덜 나쁜 것 사이에서 판단을 유보하지 않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에 만족감이 남는다면 그건 자기기만이고. 그래서 민우 등이 그를 무림고수처럼 바라보거나 존경의 눈빛을 보낼 때도 쿨하고 심드렁한 얼굴이었는지도. 중증외상 시스템을 구축하는 꿈이 이루어진 뒤 수술을 마친 최인혁은 또 어떤 표정일까. 그때까진 중년 의사 아저씨의 지친 얼굴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