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출간하면 신기한 일을 많이 겪게 된다. 일단 서점에서 내 책을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게 가장 신기한 일이고- 어떤 사람이 내 책을 사는지 숨어서 지켜보고 싶을 때도 많다. 실제로는 부끄러워서 책을 내고는 서점 근처에도 못 가지만- 내가 쓴 글을 재미있게 읽은 사람이 있다는 것도- 물론 반대도 많겠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참 신기한 일이다. 신문사나 잡지사에서 인터뷰 요청 전화가 오는 것도, 독자들에게 (일종의) 팬레터가 오는 것도 참 신기한 일이다. 벌써 소설을 다섯권이나 냈는데도 이런 일을 계속 신기하게 느끼는 것도 신기한 일이다.
새 책의 내용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무척 곤혹스럽다. “주인공은 어째서 이러저러한 일들을 겪게 되는 것인가요?”라고 물어도 할 말이 없다.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 “아, 저는 그 책을 읽은 지 오래돼서 그 부분은 기억이 나질 않네요”라고 대답하는데, 질문한 사람은 이걸 농담으로 받아들이겠지만 나는 진심이다. 내게는 이미 다 지난 일이다. 그럴 때 소설 속의 시간이 참으로 신기하다. 내게 현재였던 소설 속 시간이 독자에게는 오지 않은 미래이고, 독자가 책을 읽을 때의 현재가 내게는 이미 오래전에 끝이 난 과거이고, 내 책을 읽지 않은 사람에게 내 소설 속의 시간은 끝내 오지 않을 미래다. 우리는 같은 시간 속에서 다른 시간을 사는 것이다. 그러니까 질문에 대답을 잘 하지 못하는 걸 이해해주셔야 합니다. 아셨죠?
책을 내고 가장 곤혹스러운 순간이 책에 대한 인터뷰를 할 때라면, 가장 즐거운 시간은 독자와 만날 때다. 사람들 앞에 나서서 뭔가를 이야기해야 한다는 건 부담스럽지만 소설 속 시간을 함께 경험한 사람끼리 모여 있는 건 재미난 경험이다. 목성 패키지 투어를 함께 다녀온 클럽이나 난파된 배에서 기적적으로 구조된 생존자들의 모임 같은 곳에서 느낄 수 있는 유대감이 보이는 것이다. (난파된 배에서 구조된 사람들이 모임을 할까? 악몽 같은 시간이 되살아나는 게 싫을 수도 있겠고, 기적적으로 살아난 자신들을 격려해주고 싶을 수도 있겠다) 독자와의 만남 때는 소설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농담을 하거나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한다. 소설 얘기 같은 건 하지 않아도 우린 서로 다들 잘 아니까, 소설 속 시간을 함께 겪은 사람들이니까, 게다가 현실의 순간을 지금 이렇게 함께하고 있으니까.
마지막으로 신기한 일은 팬들한테 선물을 받는 것이다. 아니, 내 책을 읽어줘서 고맙다고 내가 선물을 해도 모자랄 판에 이런 걸 받아도 되나 몰라. 가장 최근에 받은 선물은 (‘재주소년’ 박경환의 새로운 이름) ‘afternoon’의 첫 앨범 ≪남쪽섬으로부터≫다. 아, 사려던 음반인데, 정말 고맙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해변의 아침>이라는 곡을 자주 듣는데, 제주도 바다를 바라보며 들으면 무척 어울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