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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dget] 내가 디자인하는 카메라

로모그래피 라 사르디나&플래시 DIY 에디션

특징

1. 특히 인기 높은 로모카메라인 라 사르디나 모델을 직접 디자인할 수 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카메라를 갖고 싶다면 고려할 만한 선택. 2. 89도 화각의 와이드 앵글 렌즈와 다중 노출 기능은 35mm 필름에 특별히 극적인 이미지를 담아낸다. 3. 간단한 기기인 만큼 사용법도 쉽다. 매뉴얼만 읽으면 식은땀이 나는 기계치라도 쉽게 친해질 수 있는 카메라.

몇년마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증상인데, 요즘 또다시 필름카메라에 관심을 갖게 됐다. 스마트폰을 구입한 이래로 묵혀두기만 했던 물건을 이른 휴가를 다녀오며 오랜만에 사용한 게 계기가 됐을지도 모르겠다. 좀 막막한 기분으로 셔터를 누르고, 찍은 필름을 현상소에 맡기고, 그 결과물을 확인하는 동안 이런저런 것을 생각했다. 1. 나는 참 사진을 못 찍는구나. 이 실력에 필름 값과 현상 비용을 투자하는 건 패리스 힐튼의 음반 제작만큼이나 무의미한 일이 아닐까? 2. 그래도 아날로그 사진기를 갖고 노는 일에는 확실히 어설픈 힙스터 흉내 이상의 즐거움이 있다. 또 카메라 앱의 필터 기능이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필름과 비교하면 그 질감이 작위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3. 새 필름카메라를 한번 들여볼까? 그런데 어떤 것으로?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모범 답안은 콘탁스 T3나 라이카 미니룩스다. 하지만 중고가 100만원에 가까운 거래 앞에서는 결제 버튼을 클릭하는 게 망설여지게 마련이다. 게다가 아이맥스 카메라를 든다고 해서 에드 우드가 크리스토퍼 놀란이 되는 건 아니니까.

그러던 차에 눈에 들어온 제품이 바로 로모 그래피의 라 사르디나 DIY 에디션이다. 장난감처럼 조작 방법이 아기자기하고, 누가 촬영하든 그럴듯한 색감의 결과물을 얻을 수 있는 로모 카메라는 ‘찍는 즐거움’에 충실하다는 점에서 초보자들의 보조 카메라로 괜찮은 선택이다. 이름에 암시된 대로 정어리 캔 모양에서 힌트를 얻어 완성했다는 라 사르디나 라인은 재미있는 기능뿐만 아니라 충분히 욕심내볼 만한 가격(프리츠 더 블리츠 플래시 포함 13만2천원)까지 갖추고 있다. 새로 출시된 DIY 에디션은 사용자의 취향대로 커스터마이즈할 수 있도록 디자인 자체를 말끔히 걷어낸 제품이다. 흰색으로 깔끔하게 비워진 상태도 그 자체로 예쁘지만 약간의 솜씨와 시간을 투자하면 훨씬 특별한 카메라를 얻을 수 있다. 동봉된 스크루 드라이버를 이용해 앞판을 분리해낸 뒤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쓰거나, 물감을 끼얹거나, 스티커를 붙여 재조립하면 끝. 하나부터 열까지 손을 타는 대단히 시대착오적인 기계인 셈인데 이 번거로움이야말로 카메라에 특별한 온기를 더하는 요소다.

물론 라 사르디나 DIY 에디션이 10만원대의 스케치북으로서만 매력적인 건 아니다. 89도 화각의 와이드 앵글 렌즈는 풍경을 촬영할 때 진가를 발휘한다. 다른 제품을 사용할 때보다 프레임에 훨씬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는 것. 특유의 뭉개진 듯한 색감이 더해지면 고양이가 꾸벅꾸벅 조는 모습을 찍어도 상당히 극적인 이미지처럼 보인다. 두개의 상을 한 화면에 아련하게 겹쳐놓는 다중 노출 기능 역시 라 사르디나를 선택할 만한 이유다. ‘내가 본 것’이 아닌 ‘내가 느낀 것’을 담는 도구로서는 이 간단한 플라스틱 카메라가 온갖 기능을 다 갖춘 고화질의 디지털카메라보다 앞설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