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업계에서 일하는 분에게 재미난 비화를 들은 적이 있다. 예전 모 음료CF는 소리가 유독 컸는데, 회장님이 고령이시니 볼륨을 좀더 키우라는 요청 때문이었다나. 시장조사, 영상기술과 음향기술, CD(creative director), CW(copy writer), AE(account executive) 기타 등등. 전문화와 분업화를 거친 광고제작의 프로세스에 끼어 있는 비논리의 영역! 그래도 광고주를 기어이 설득해내는 순간이나 광고의 반응을 체감하는 짜릿함이 있다 하니 그저 감탄뿐.
Mnet의 <꿈꾸는 광고 제작소>는 아마추어 광고인들의 공모전을 대체하는 리얼리티 서바이벌 쇼다. 예선을 거친 10팀은 제품광고, 비교광고, 공익광고, 기업 이미지 광고 등의 미션을 수행한다. 미션 내용을 헛짚어서 엉뚱한 것을 내놓기도 하고 일주일 내내 고집하던 아이디어를 포기하고 급하게 내놓은 차선책이 호평을 받는 경우도 있다. 근사한 완성품들의 각축장을 기대했다면 실망이 클 테지만 아이디어를 실체화하는 과정이나 엉성하면 엉성한 대로의 결과물을 구경하는 재미만큼은 충분하다. 요리가 주제인 쇼는 심사위원의 표현과 표정에 기대 상상 속의 맛을 추리하는 갭이 있고, 의상 쇼는 암만 봐도 뭐가 좋은지 통 모를 아방가르드한 천 조각들에 소외될 때가 있지만 광고는 전부를 감각할 수 있고 무엇보다, 쉬운 게 장점이다.
<꿈꾸는 광고 제작소>는 아마추어 디자이너들이 미션에 따라 옷을 만드는 <프로젝트 런웨이> 시리즈와 유사한 점이 많다. 미국판 멘토 팀 건이나 국내판 간호섭 교수의 역할을 맡은 광고사 대표 재키 곽이 특히 매력적. 사자 갈기 같던 헤어스타일이 회를 거듭할수록 가라앉고, 자비를 모르던 눈빛은 갈수록 누그러들지만 그녀의 조언은 시종일관 날카롭다. 광고홍보학과 교수, CF감독, 대형 광고기획사 간부가 진행하는 심사평은 각자 평가 기준을 밝혀놓고 진행되나 대개의 리얼리티 쇼에서 노선이 불분명한 참가자를 탈락시키며 진정성이나 절박함을 운운하듯 이곳에서도 ‘광고와 뮤직비디오 양쪽에 관심이 있다’는 도전자를 광고와 뮤직비디오 양쪽에서 활약하는 차은택 심사위원이 탈락시키는 촌극이 벌어졌다. “광고는 미쳐야 할 수 있다”니. 목표가 선명한 사람을 원한다고 하면 될걸.
열정을 소환한 다른 장면을 보자. PT를 앞둔 참가자가 “자신있습니다. 어차피 제 자식 파는 거니까요”라며 위악과 흡사한 자신감으로 방어벽을 치자 심사위원은 “광고는 실력의 차이보다 열정의 차이로 승부가 나는 게임”이라는 요상한 말로 지적한다. 또 서바이벌 쇼의 열정타령인가 질색했는데… 이건 좀 애매하네. 저이가 <프로젝트 런웨이> 도전자라면 상관없다. 태도가 고까워도 옷이 근사하면 심사위원이 참아야지. 그런데 광고를 다루는 경우는 간단치가 않다. 광고시장은 광고인에 앞서, 그리고 소비자와의 사이에 광고주의 단계가 존재한다. 피드백을 받고 설득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 확신에 찬 답을 폐기하고 또 다른 답을 찾는 끈질김은 충분히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니까. 저 참가자가 습득해야 할 기술임에는 분명하다.
자, 이만큼 광고인들을 닦달했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파를 타는 괴 CF들의 연원도 밝혀봄 직하다. 다음 시즌에는 좀더 많은 광고주들이 들어와 팀 미션을 함께 진행하는 건 어떨까. 은연중에 드러나는 광고주의 고집이나 양보할 수 없는 취향도 엿볼 수 있고, 서로의 주장이 충돌하거나 한쪽이 일방적으로 키를 잡아 탄생하는 괴작을 구경할 수 있을지도! 덧붙여서, 이 쇼의 제작을 지원하고 지나치게 뽕을 뽑으려드는 모 카드회사의 PPL 전략을 세명의 심사위원이 뭐라 평할지 궁금하다. 정도껏? 과유불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