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기타를 잡았다, 라는 문장을 쓰고 보니 지금은 엄청나게 기타를 잘 치는 사람처럼 보일까 겁나서 미리 밝히자면 그때나 지금이나 기타 실력은 매한가지다. 학원에 다닌 적도 없고 누군가에게 정식으로 배워본 적도 없으니 도통 늘지를 않는다. <이정선 기타교실>의 타브 악보를 보면서 익힌 운지법과 스트로크로 25년 넘게 연명하고 있다.
기타를 잘 치고 싶은 마음 굴뚝같지만 그렇다고 공연장에 올라갈 만큼 잘 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저 기타라는 악기가 좋고, 기타를 치고 있을 때의 기분이 좋고, 코드를 정확하게 짚었을 때 나는 화음이 좋을 뿐이다. 마음이 어지럽거나 화가 나는 일이 있으면 기타를 연주한다. 소리가 마음을 가라앉힌다. 손가락 끝에 집중하면서 연주하다보면 잡생각이 사라지고 만다. 최근 기타와 관련한 이상한 증상이 하나 생겼다. 기타를 잡고 연주를 시작했다 하면 졸린 것이다. 다른 사람이 내는 기타 소리에 졸린 것이야 이해할 수 있지만 내가 내는 소리에 졸린 건 아무래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 고개를 흔들면서 졸음을 쫓아내보려고 하지만 손이 무겁고 고개가 무겁고 기타가 무겁다. 결국 30분도 못돼서 기타를 놓고 만다. 아, 나무 그림을 그려서 새가 날아오게 만든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자기가 연주한 기타에 취해 잠이 들어버리는 악공이라니! 참으로 아름답구나.
기타를 잘 치는 사람을 보면 조금 부럽긴 하다. 무엇보다 나 같은 아마추어의 연주보다 소리가 훨씬 아름답다. 기타로 태어났으면 노련한 연주가의 손에서 제 목소리를 한번이라도 내보는 게 기쁘겠지. 나의 기타는, 뭐랄까, 음악 천재로 태어났지만 자신의 가능성을 10%도 알아봐주지 못하는 잘못된 스승을 만나 시골 5일장 불법 만병통치약 판매도우미 가수를 하며 자신의 여생을 갉아먹는 비운의 가수 같달까, 그렇게 내 기타가 쓸쓸해 보일 때가 있다. 나름 비싼 기타인데…. (‘집시앤피쉬 오케스트라’, 이아립과의 듀엣팀 ‘하와이’에서 활동했던) 이호석의 데뷔 앨범을 들으면서 기타 소리가 참 부러웠다. 그의 노래들에 등장하는 기타 소리들은 모두 신나고 편안하고 즐겁다. 이호석과 기타의 듀엣팀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기타 소리는 살아서 숨을 쉬고 노래를 부르고 함께 호흡을 맞춘다. 노래들 역시 모두 평화롭고 즐겁고, 귀엽다.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씨익 웃게 된다.
이번 앨범에서 제일 마음에 들었던 노래는 <시골길 쌈바>인데, 이 곡을 들으면 이호석의 노래들이 얼마나 신나고 귀여운지 알 수 있다. ‘난 음악이 없었던 마을의 수줍은 한 소년’이라는 가사로 시작하는데, (이 소년의 가슴 깊은 곳에 쌈바의 ‘쏘울’이 들어 있다는, 웃기는 내용의 가사다) 나 역시 음악이 없었던 집안의 수줍은 한 소년으로서 무척 공감이 가는 도입부였다. 수줍은 소년들에게 음악은 친구이자 애인이자 꿈이었으니까. 수줍은 소년들이여, 기타를 잡아라! 삼바의 리듬에 맞춰 엉덩이를 흔들어라! ‘온 세상에 가득한 이 축제의 열기’를 느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