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영화진흥사업 중장기 계획을 발표하고 있는 영진위 김의석 위원장.
국가재정법에 따라, 영진위는 매년 6월30일까지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에 그다음해의 영화발전기금 운용계획을 제출하게 되어 있다. 여기에는 영화진흥사업의 기본계획과 예산안이 담긴다. 정책 담당자의 싸움은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물론 그전부터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광부)의 압박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문광부는 ‘문화(산업) 진흥’의 목적을 지닌 부처다. 이와 비교하면, 국가 예산의 효율적 운용을 우선목표로 하는 기재부의 입장은 살떨릴 정도다(물론 지지난해에는 문광부가 잘라버린 예산을 기재부가 되살리는 예외적인 사례가 있긴 했다). 모든 사업 계획에 대해 예산 삭감을 전제로 이야기하는 사무관을 설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여기서 “영화가 그렇게 중요한가요?”라는 선문답 같은 질문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가장 기본적이지만, 가장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 이 질문은 6개월에 걸쳐 문광부-기재부-국회로 이어지는 예산 심의 전 과정에서 정말 지겹게 반복된다.
그때마다 상투적으로 사용되는 어구가 있다. “영화는 고부가가치 산업이고, 영상미학의 최전방에 있는 종합예술이고, 국가브랜드 가치를 높여주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고… 그런데 한국영화산업은 계속 위기여서 지원이 필요하고…” 등등. 여기에 몇 가지 통계 데이터를 붙여놓으면 일단 정부 제출용 보고서의 서론이 마무리된다. 그러고는 개별 지원사업의 구체적인 필요성과 영화계의 여론 등을 어필하는 쪽으로 슬쩍 논의를 바꿔놓으며, 이 난감한 질문을 피해나가기 마련이다. 영화를 만들거나 관람하는 개인의 차원에서 ‘왜 하필 영화인가요’에 대한 대답은 ‘영화가 좋아서’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 하지만 한정된 자원을 받아와서 정책을 마련하고 집행해야 하는 목적을 가진 상황에서는 영화가 여타 예술 분야나 콘텐츠 산업보다 중요한 이유를 정책결정권을 가진 이들에게 설득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업예산은 물론이고 영화 진흥만을 위한 자금과 조직을 운영할 수 있는 기구의 존립 기반까지 흔들린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매년 적자를 반복하는 영화사업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구성원 스스로 설득의 논리를 만들어야 한다.
문제는 점점 설득하기가 쉽지 않아진다는 데 있다. 매체는 융합되고, 콘텐츠 장르는 다양해지고, 소비자의 문화활동 영역은 점점 넓어지고 있다. 그에 비해 영화산업은 성장속도가 둔화되고, 영화의 문화적 영향력도 줄고 있다. ‘영화’라는 것을 따로 떼서 지원하고 육성해야 할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편, 대선 이후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콘텐츠 전반에 대한 정책 변화가 시도될 것이고, 기관이나 예산 통합 문제가 거론될 것은 불보듯 뻔하다. 2014년 영화발전기금의 모금 중단을 앞두고 있기에 정치적 환경은 영화계에 더욱 불리할 수 있다. 영화를 업으로 삼는 이라면 한번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아닐까. 그간 호들갑스럽게 떠들었던 한국영화산업의 위기보다 더 큰 ‘영화’의 위기가 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영화진흥금고를 대체한 영화발전기금은 2007년 스크린쿼터 축소에 대한 보상책의 일환으로 조성됐다. 기존의 영화진흥금고 재원 1천억원, 정부 출연금 2천억원, 그리고 2014년까지 극장 매출의 3%를 떼서 5천억원의 전체 기금을 마련하는 식이었다. 따라서 애초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사업계획을 갖지 못했”다. 영화진흥금고 시절보다 승인 절차가 더 복잡해지면서(기금계획 확정 승인까지 무려 1년이 걸린다) 기금의 탄력적이고 자율적인 운용 역시 전보다 후퇴했다. 영진위의 <한국영화>(17호, 2011년 6월30일 발행)에 따르면, “기금 운영의 독립성 확보가 어려워지면서” 영진위 9인 위원회의 역할도 미미해졌으며, 영진위가 영화계 내부의 시급한 현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접근할 수 없게끔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