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NE1님들께서 새 노래를 발표하셨으므로 이 자리를 님들에게 바쳐야 마땅하겠으나 아직은 <I Love You> 한곡밖에 발표하지 않은 상태고, <씨네21>의 다른 지면에서 앨범을 다룰 게 분명하므로 일단은 경거망동을 삼가고 조용히 전곡 발표의 시기를 기다릴 생각이다. <I Love You>는 서울 마을 갈 때 몇번 들었는데 마냥 좋더라. 새로운 노래들은 주로 버스에서 감상하는 편이다. 예전에 시디플레이어를 가지고 다닐 때에는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비닐을 뜯고 시디를 플레이어에 넣으면 난생처음 듣는 음악이 이어폰에서 흘러나왔다. 돌아오는 길이 지루하지 않았다. 서서 와도 즐거웠다. 음악은 버스에서 들어야 제맛이라고 생각했다. 요즘도 새로 산 시디를 파일로 바꾼 다음 버스에서 아이팟으로 듣는 경우가 많다.
버스 환경이 많이 바뀌었다. 일산에서 서울 가는 (아니, 서울에서 일산 오는 건가? 아무튼) 광역버스에는 두대의 텔레비전이 설치돼 있는데 거기에서 계속 뭔가를 보여주는 바람에 눈 둘 곳이 마땅찮다. 광고를 보여주기도 하고, 헛웃음이 절로 나는 난센스 퀴즈를 내기도 하고 (난센스 문제를 척척 다 맞히는 나는 센스가 있는 거야, 없는 거야?) 화면을 휙휙 지나가는 글자를 알아맞히라는 문제를 내기도 하는데, 관심이 없으면서도 자꾸만 눈길이 간다. 좁은 버스 공간에서 계속 움직이는 화면이 있으니 눈이 갈 수밖에 없다. 눈을 감아도 화면 속 빛의 움직임이 눈두덩을 계속 간지럽힌다.
버스 텔레비전의 방송 중에는 뮤직비디오도 있다. 당연히 음악은 나오지 않고 영상만 보인다. 처음에는 저런 바보 같은 영상이 다 있나 싶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자꾸만 말려들고 있다. 영상을 보면 환청이 들리는 거다. 아예 모르는 노래면 괜찮은데, 적당히 아는 노래들은 특정 부분의 멜로디가 자꾸만 귓가에서 맴돈다. 최근에는 지나의 <2Hot>이 절찬리에 상영 중인데, 소리도 내지 않고 열심히 섹시하게 춤을 추고 있는 지나를 볼 때면 ‘뜨거 뜨거 난 너무 뜨거워’ 부분이 계속 생각난다(진정한 후크송!). 가끔은 이어폰을 꽂지 않은 채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고 싶은데, 그러기가 힘들다. 아, 버스에서 뮤직비디오 화면과 악전고투하게 될 줄은 몰랐다. 비디오가 라디오 스타들도 다 죽이더니(video killed the radio star), 나도 죽일 생각인가보다.
버스에 타면 늘 맨 뒷자리에 앉곤 했는데, 요즘은 텔레비전의 사각지대에 앉는 버릇이 생겼다(왼쪽 뒤에서 다섯 번째쯤이 가장 좋다). 버스에서 화면에 내 눈을 뺏기고 싶지 않다. 나는 풍경을 보고 싶고, 계절을 보고 싶고, 날씨를 보고 싶고, 햇살을 보고 싶고, 지나치는 사람들을 보고 싶다. 그걸 보면서 음악을 듣고 싶다.
머지않아 버스 텔레비전에서 2NE1의 뮤직비디오도 흘러나오려나. 나는 그걸 보면서 <I Love You>를 따라부르고 있으려나. 보느냐, 보지 않느냐, 힘든 결정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