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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tecture+] 공간은 그 자체로 탐구 대상이다
황두진(건축가) 2012-07-27

정육면체로 구성된 미로를 헤매는 영화 <큐브>

<큐브2: 하이퍼큐브>

나에게 아주 특별한 3x3의 루빅스 큐브가 하나 있다. 무슨 보험회사인가에서 판촉물로 준 것인데, 거기에 이를 발명한 에르노 루빅 박사의 친필 사인이 있다. 몇년 전 그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루빅스 큐브를 들고 가서 사인을 받았다. 그는 헝가리인으로 건축을 가르치는 교수다.

나도 내 큐브를 만들었다. 한때 동일 형상의 물체가 공간을 연속적으로 채울 수 있으려면 어떤 형태적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가라는 문제에 빠져든 적이 있다. 결국 그 일반적 해를 찾는 데 성공해서 몇개의 변종들을 만들었다.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두진의 큐브’(Doojin’s Cubes)라고 불린다.

건축가들은 당연히 공간을 탐구한다. 다만 대부분 순수한 공간보다는 공간이 담아야 하는 기능과 관련된 문제들에 대해 고민한다. 그러나 드물게 공간의 성질 그 자체가 탐구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구형의 공간에서는 어디에 서 있건 자신이 그 공간의 중심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로마의 판테온은 이런 성질을 종교적 공간에 적용한 좋은 예다. 육면체 공간에서는 갖기 어려운 경험이다.

두진의 큐브.

캐나다 필름센터가 1997년에 발표한 <큐브>는 이런 공간적 탐구가 영화와 접목된 드문 예다. 여섯명의 사람이 오직 정육면체로만 구성된 공간적 미로 속을 헤매며 탈출을 시도한다는 줄거리다. 그 미로의 시스템을 이해하는 것도 퍼즐이지만 각자의 인간성을 파악하는 것은 더 어려운 퍼즐이다. 마치 카프카의 소설처럼 이 영화는 예측할 수 없는 인간성의 심연을 탐구한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그 공간적 시스템이 형태적으로는 등방성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중력으로 인해 일정한 방향성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배경이 지구였기 때문이었겠지만, 무중력의 우주를 배경으로 했으면 정말로 상하좌우의 개념이 없는 새로운 경험이었을 것이다.

2003년 시퀄인 <큐브2: 하이퍼큐브>가, 2004년에는 프리퀄인 <큐브 제로>가 발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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