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7월29일까지 장소: 세종M씨어터 문의: 1544-1555
“부모님 모시고 와라.” 학창 시절, 회초리보다 더 오금을 저리게 했던 선생님의 한마디다. 그 말은 “대체 가정교육을 어떻게 했기에…”를 내포하고 있으니까. 그 말을 그대로 표현한 연극 한편이 무대에 올랐다. 제목에서 보여주듯 무대에 학생들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의 등장인물들은 아이들의 부모와 교장, 학생주임, 담임선생이다.
연극은 서울 강남의 어느 명문 중학교 상담실에서 시작된다. 한 여학생이 이른 아침 교실에서 목을 맸다. 자살한 아이는 ‘여드름의 신’을 줄인 ‘여신’으로 불렸다. “저는 친구들한테 왕따를 당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귀찮고, 제 자신이 싫어졌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미안하다며 남긴 유서 끝에 가해자 5명의 이름이 있었다. 지목된 5명의 부모가 학교로 호출된다.
현직 교사의 눈이기 때문일까(하타사와 세이고가 25년간의 교사 생활을 바탕으로 썼다). 교사와 부모들의 행동과 심리묘사가 섬뜩할 만큼 사실적이다. 그리고 다섯쌍의 부모 캐릭터에는 우리 시대의 학부모 군상이 압축돼 있다. 목소리 큰 학부모회장과 대기업 간부 남편, 조손가정이라 어딘지 위축된 조부와 조모, 냉정과 논리를 가장한 교사 부부, 외국물 먹은 이혼녀, 나서지 못하고 주변을 맴도는 평범한 주부. 어색한 그들의 관계지만 아이문제 앞에서는 한결같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내 딸’. 진실 따위는 필요없다.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유서를 태우고, 또 한통이 나타나자 씹어 삼켜버린다. 그것도 모자라 되레 죽은 아이를 손가락질한다. 아이의 엄마가 식당에서 일한다는 사실을 들어 ‘자격지심과 열등감으로 죽었을 것’이라고 뒤집어씌운다. 학교는 또 어떤가. 왕따 학교라는 게 밝혀져 학교 위신이 추락할까 쉬쉬하면 은폐하기 바쁘다. 결국 “전체를 위해서”라는 말 한마디에 모두가 사건을 덮어버리는 공모자가 된다. 비겁한 부모들에게서 ‘닥치고’ 살아가는 99%의 우리를 본다. “우린 살아야 하니까”라는 작품의 마지막 대사가 스스로를 변호한다. 누가 저들의 얼굴에 침을 뱉겠는가, 싶다가 흠칫 놀란다. 무대 위의 얼굴, ‘니 부모’의 얼굴이 바로 우리 모두의 얼굴일 수도 있으므로.
연극은 끝내 속시원한 화해나 눈물겨운 반성이 없다. 작품은 괴물에게 돌을 던지기보다 누가 그 괴물을 만들었는가를 묻는다. 설교하거나 지시하지 않으면서 냉정하게 보여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