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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주의 TVIEW] 속이 뭐가 됐든 공유잖아!

<빅>에 빠져들수록 엔딩에 대한 고민이 커져가다니

“…그렇게 36계단을 온몸으로 굴러떨어진 저는 일주일 남은 임용고시도 치르지 못하고 꼬리뼈와 손목 골절로 두달간 병원에 입원해야 했고, 그동안 그 남자가 저를 치료해줬어요. 그 사람이 의사였거든요. 깁스를 풀던 날 청혼을 받았고요. 한달 뒤에 그 사람과 결혼해요.” 버스에 앉아 자신이 보낸 라디오 사연을 청취하며 신혼살림 리스트에서 전기압력밥솥 항목을 지우는 행복한 예비신부 길다란(이민정). 저 사연이 밥솥을 타게 된 이유는 나열된 사건 사이의 비어 있는 인과관계가 청취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일 것이다. 운명론이나 의사와 환자간의 불타는 로맨스를 떠올릴 수도, 누구는 조건 차이나는 결혼을 빈정거릴 수도 있겠지. 어쨌거나 꼬리뼈에 손목 골절이면 움직일 수조차 없었을 텐데…. 좋아하는 여자와 이런 짓 저런 짓도 해보지 않은 채 깁스 푸는 날 청혼하는 남자라니. 암만 다정해도 심란한 생각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사랑을 의심하면 결혼을 망칠까 겁먹었던 다란은 “내가 다란씨 인생 책임져야겠어요”라던 청혼의 말을 떠올리며 그저 미안해서 하는 결혼이면 하지 않아도 좋다고 내지른다. 간신히 진짜 연애를 시작하거나, 아예 끝이 날 수도 있었던 그때….

KBS 드라마 <>은 사연 속의 약혼남 서윤재(공유)와 다란이 기간제 교사로 일하는 학교의 전학생 강경준(신원호)의 영혼을 바꿔버렸다. 교통사고를 당한 두 남자의 멘털 체인지. 그리고 지켜보는 여자의 멘털 붕괴. 이미 사망선고를 받았던 윤재는 경준의 멘털로 다시 살아나고, 경준의 몸은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채 병원에 있다. 사랑 없는 결혼인가 회의하는 여성에게 약혼자의 몸과 18살 소년의 멘털이 합체된 존재는 의심부터 시작해 스스로의 감정을 확인하는, 이전에 하지 못했던 연애를 가능케 한다. ‘나를 사랑하는지’ 묻길 겁냈고, 약혼자가 깨어나 그의 목소리로 답을 하기 전에 일방적으로 마음을 정리해버렸던 다란은 여러 일을 겪으며 비로소 어린애 같았던 자신을 인정할 수 있게 되지만 윤재의 멘털은 깨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진짜는 이제부터다! 경준은 윤재의 몸으로 1년 동안 미국에 가서 의사 공부를 하고 돌아오고, 다란은 19살이 된 경준이 성인이 될 때까지 돕는다는 명분으로 계약결혼을 시작한다. 더이상 어린애처럼 행동하지 않는 경준과 다란 사이에 새로운 감정이 싹트는데 여기서 다란과 시청자에게 질문이 던져진다. 그녀가 약혼자의 얼굴을 한 소년과 지내면서 그의 멘털만 사랑한다고 할 수 있을까? 딱 잘라서, 10회까지 공유의 얼굴을 한 소년과의 짜릿한 연애를 시청한 사람들이 다시 신원호로 돌아온 경준과 다란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경준은 윤재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대리모에게 태어난 동생이란 게 밝혀졌는데 족보는 어쩌지? 바야흐로 윤재의 정신이 돌아오지 않는 ‘좋은 결말’을 기다리게 된 제2차 멘붕. 속이 뭐가 되었든 공유면 돼! 공유면 좋다고!

‘한 아이가 다른 아이를 살리고 그 아이가 또 다른 아이를 구한다’는 드라마 속 동화책 ‘미라클’의 대단히 노골적인 암시는 몸을 내주는 희생의 반복일까? 경준의 사고를 알고도 학교나 친척에게 알리지 않고 내버려뒀던 다란의 교사답지 않은 처신이나, 육체를 빌려 서윤재의 통장을 털고, 집을 매매하고, 결혼을 감행하는 범죄 수준의 해프닝들은 경준의 몸 안이 빈껍데기였기 때문일까? 만약 윤재가 원 상태로 돌아온다면 빈 통장과 호적등본과 웨딩앨범을 받아들고도 전처럼 다정하게 웃을 수 있을까? 누군가가 밥솥을 타가는 라디오 사연을 들을 때처럼, 도리없이 성긴 이야기 사이를 상상하고야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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