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 여행을 준비할 때 제일 먼저 아이팟 한가득 음악을 챙긴다. 라디오헤드도 있어야겠고,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도 빼놓을 수 없고, 벤 폴즈도 있으면 좋지 않을까, 낯선 도시로의 여행이라면 재즈나 클래식을 들어야겠지, 라고 수선을 떨다가 결국엔 가요를 가장 많이 채워간다. 낯선 곳에서 오랜 시간 지내다보면 한국말이 그리워지지 않을까 싶어서 그러는 건데 (이보게, 자네 여행은 대부분 일주일 이내가 아니던가!) 가장 큰 문제는 여행 가서는 아이팟을 거의 꺼내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비행기에서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다가 극심한 두통이 온 이후로는- 이게 과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한 건지는 모르겠다- 절대 하늘 위에서 음악을 듣지 않는다. 외국의 도시를 다닐 때에는 눈과 귀와 코를 모두 열어두어야 하기 때문에, 낯선 도시의 소리를 듣고 냄새를 맡아야 하기 때문에,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을 시간이 없다.
여행 중 아주 짧은 순간 음악을 듣게 된다. 마음에 드는 카페를 발견한 다음 여행의 고단함과 경로의 고민과 소통의 난처함을 내려놓고 조용히 커피 한잔 마실 때, 피곤한 몸으로 호텔로 돌아온 다음 샤워를 끝내고 빳빳하게 세탁된 시트 위에 앉았을 때, 창밖으로 생전 처음 보는 풍경이 눈앞에 펼쳐질 때, 그래서 쓸쓸하기도 하고 덜컥 겁이 나기도 하는 그 순간에, 음악을 듣는다. 그럴 때 듣는 음악은 정말 꿀맛 같다. 아이팟에 넣어둔 음악이 1만3710곡이고 그중에서 한 세곡쯤 듣는 것이니까 도대체 경쟁률이 얼마야. 지난 여행 때 나는 (정바비와 계피의) <<가을방학>>을 들었다. 낯선 도시에서 듣는 계피의 목소리? 안 들어봤으면 말을 마시라! 눈물 난다.
가을방학과 (티미르호의) 김재훈이 만나서 내놓은 새 앨범 《실내악 외출》을 듣다가 가슴 치는 가사를 만났다. <한낮에 천문학>의 첫 소절. ‘낯선 도시에서 가장 먼저 하는 일/ 해 떨어지는 시간을 적기/ 그림자가 섞이는 그때 비로소 난 도착할 수 있는 것’. 계피의 목소리로 이런 문장을 만나니 지금이라도 당장 비행기 티켓을 끊고 외국으로 날아가고 싶다. 피아노, 클라리넷, 첼로 소리 위로 날아오르는 계피의 목소리는 국경 위를 유유하게 넘나드는 연기나 구름 같다. 외국에 있었다면 여행 중의 시간을 관세로 지불하고 계피의 나라로 출국했을 것이다.
<<실내악 외출>>에는 <한낮에 천문학> 말고도 아름다운 노래들이 즐비하다. <<가을방학>> 앨범의 노래를 클래시컬하게 편곡한 것도 있고, <한낮에 천문학>이나 <첫날밤> (아, 너무 귀여운 노래) 같은 신곡도 있다. 이 앨범을 듣자고 외국에 나갈 수는 없으니 (새 앨범 가격 50만원!) 서울을 외국이라 생각하고 이 노래들을 들어야겠다. 하긴, 우린 모두 ‘다른 나라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니까. 해 떨어지기 직전 우리의 그림자가 섞이는 그 순간, 난 서울이라는 낯선 외국에서 이 노래들을 듣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