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용산에서는 제11회 미쟝센단편영화제가 열렸다. 900여편의 작품이 출품되었고 예심을 거쳐 60여편의 작품이 다섯개의 장르로 나뉘어 본선에서 상영되었다. 나는 이 영화제에 심사위원장으로 참여하였고 대상과 각 장르의 최우수 작품상, 그리고 심사위원 특별상 등을 선별하였다. 올해 본선에서 상영된 작품 중에는 학교폭력 문제와 영화에 관한 영화가 두드러지게 많은 점이 인상적이었다.
학교폭력과 왕따 문제는 사실 장·단편, 상업·독립영화를 가릴 것 없이 지난 몇년간 꾸준히 한국영화의 주요한 테마로 자리잡아왔다. 올해 영화제에서는 이 테마에 대한 단편영화인의 고민이 더욱 확대되고 다양해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예전에는 학교폭력 문제는 관계의 비정함과 집단적 죄책감을 고발하는 사회파 영화 계열로 수렴되는 것이 대부분이었으나 올해는 코미디, 멜로, 호러, 판타지, 뮤지컬, 히어로물 등 다양한 장르적 특성을 살린 영화 충동으로 확장되는 경향을 보여주었다.
영화에 관한 영화들이 많아졌다는 점은 올해 영화제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었다. 단편영화 감독들은 세상에 대해 질문하기에 앞서 자신이 영화를 찍는 행위가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더 중요해 보였다. 엄청난 재정적 부담을 짊어지고 스탭과 배우의 희생을 강요하면서까지 나는 왜 영화를 만드는가에 대해 그 누구보다 스스로를 설득하고 싶어 하는 듯했다. 영화 각자의 장르와 결론을 떠나 화면에는 자조와 연민, 회의와 피로가 그득했다. 최근 단편영화들이 이렇듯 바깥세계에 대한 시선을 거두고 영화 만들기 과정을 통한 자기 증명에 몰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지난 몇년간 한국사회는 점점 희망을 갖고 살아내기에 끔찍한 곳으로 변해가고 있는 듯하다. 고용은 불안정해지고 복지는 후퇴했으며 인권은 땅에 떨어졌고 환경은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계층간 이동과 소통은 막혀버렸고 용산참사에서 상징적으로 나타나듯 취약계층은 생존의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갈 곳 잃은 청년들은 골방에 틀어박혀 절망에 취해 하루하루를 연명한다. 이처럼 젊은 영화인들에게 세상은 이미 질서를 포기하고 이해를 거부하는 것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예술가들은 세계에 대한 인식을 회의하고 자신의 존재를 내파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세상이 무엇이 잘못되었나 하는 물음의 주어가 자기 자신으로 바뀌는 것이다.
젊은 영화인들의 고민과 불안은 한동안 계속될 것이다. 그들은 이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다시 카메라를 들어야 할 것이고 고민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부디 그들의 영화에서 발견한 자신의 모습이 다시 세계로 열린 창을 열어젖힐 새로운 희망의 근거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영화를 만든다는 건 당신이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일이고 당신은 그걸 잘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