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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도가니] 최소한, 배 곯지 않게

일보 전진한 한국영화 시나리오표준계약서안

영화진흥위원회는 지난 5월15일, 한국영화 시나리오표준계약서안 영화인 공청회를 열었다.

올해 한국영화의 약진이 놀랍다. 400만명이 넘는 영화가 3, 4편이 넘고 관객 200만, 300만명을 동원한 ‘중박’영화들도 다수다. 하지만 1천개가 넘는 스크린을 장악하고 총관객 수의 70%가 넘는 점유율을 기록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도 연이어 등장하고 있다. 한국영화가 예년보다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이러다 한국영화가 고사하는 것이 아니냐는 위기론이 나타나는 건 이 때문이다. 어차피 물량공세로 볼 때 한국영화가 할리우드영화의 경쟁 상대가 될 수는 없다. 경쟁의 해답은 결국 좋은 시나리오, 참신한 시나리오, 통찰력있는 시나리오, 재미있는 시나리오라는 걸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국영화계에서 시나리오작가에 대한 위상은 부끄럽고 참담해서 거론하는 것이 창피할 정도다. 지난해 1월, 고인이 된 어느 작가로 인해 시나리오작가의 처우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는 했지만 역시나 현실적인 대안이 마련되지는 못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주관하고 시나리오작가협회, 제작가협회, 프로듀서조합, 투자사, 감독조합 등이 지난 1년간 머리를 맞대고 만든 ‘시나리오표준계약서안’은 바로 이러한 현실 속에서 마련된 것이다. 총 5개의 표준계약서안을 만들었는데 그 계약서를 지금 다 설명할 순 없지만 일단 대표적인 요지는 시나리오작가를 창작의 주체로 인정하는 것이다. 주체로 인정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시나리오작가에게 작가료를 선지급한 뒤 글을 쓰게 하자는 것, 작업 기간을 정하자는 것, 무작정 고치라고 하지 말고 초고, 재고, 재재고 등 고수를 정하자는 것이다. 또한 그렇게 노력해서 쓴 시나리오로 만든 영화가 흥행을 하면 그 과실을 시나리오작가에게도 지급하자는 것이다(물론 그 과실은 개별 계약자들이 알아서 정하면 된다). 뿐만 아니라 리메이크나 속편, 타 장르로 제작될 경우 원천소스를 제공한 시나리오작가에게 그 대가를 지불하라는 것이 이번 표준계약서안의 핵심이다. 그렇다고 해서 시나리오표준계약서안이 작가의 권익만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작가의 시나리오가 제작하고자 하는 영화의 방향과 부합하지 않으면 제작자가 작가를 중도에 해임할 수 있는 권리도 부여했다. 시나리오작가들도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작가직을 내놓을 각오를 해야 하는 조항이다.

이 표준계약서안이 완벽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시행과정에서 여러 문제가 드러날 수도 있다. 하지만 기존의 문제점을 합리적으로 정리했다고는 생각한다. 많은 시나리오작가들이 방송으로 넘어가고, 타 직종으로 전업하는 모습을 언제까지 지켜만 볼 것인가. 또 언제까지 그들에게 예술가이기를 기대하고, 영화인이라는 자부심만 강조할 것인가. 시나리오작가들이 영화판을 떠나는 이유는 단 하나 현실적인 생활고 때문이다. 자신의 작품이 대박을 냈는데도 생활고에 시달려야 하는 상황을 누가 이해할 수 있겠는가? 동막골 촌장님의 말씀처럼 현재 시나리오작가의 처우문제에는 “뭐를 마이 멕이는” 마인드가 필요하다. 올해 한국영화의 약진이 단지 올해만의 일이 아니기를 원한다면 말이다.

시나리오표준계약서안은 현재 각계의 의견수렴과 발표를 앞두고 있다. 오는 7월 말이 잠정적인 발표 시점이다. 의견수렴 과정에서 다소 난항을 겪은 부분은 시나리오작가에게 2차 저작권을 인정하는 부분이다. 속편, 리메이크, 프리퀄에 대한 권리뿐만 아니라 뮤지컬, 드라마, 소설 등 타 매체로 제작할 경우의 권리다. 기존 관행으로는 작가와 제작사가 계약을 해도 투자계약에서 투자사가 권리를 가져가게 되어 있다. 제작사가 미리 인정을 할 수 없는 부분인 만큼 투자사의 입장을 확인하는 게 필요하다. 이 밖에도 그동안 비공식적으로 지급하거나 지급하지 않았던 인센티브를 공식화하는 것, 그리고 크레딧 병기에 관해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이번 표준계약서안의 3가지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