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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주의 TVIEW] 고민이야말로 의미있어요

<아이두 아이두> 주인공 지안의 임신과 출산 딜레마를 생각함

잘생긴 연하남이고 나발이고 요즘 같은 세상엔 지구 종말보다 원치 않는 임신이 더 두려운 법. 심지어 처음 만난 남자와 하룻밤에 덜컥 임신이라니. 세계적인 구두 디자이너 황지안(김선아)이 임신으로 인생의 새로운 국면을 맞는 MBC 드라마 <아이두 아이두>는 뒤늦게 도착한 손님이 눈치없이 들쑤시듯 불편한 구석이 있다. 근래 보기 드물게 철없고 무능력한 연하남 태강(이장우)은 지안의 회사에 운 좋게 입사하더니 그날 밤이 당신에겐 아무 의미도 없었느냐고 칭얼대고, 지안의 아버지는 딸의 맞선 상대를 찾아가 ‘하필 외간 여자를 상대하는 산부인과 의사’냐고 불평한다. 아버지의 친구들은 지안의 면전에서 그 나이에도 임신이 가능하냐는 둥 대단히 무례한 참견을 거듭한다.

오지랖 넓은 인물들은 질색이지만 어쨌든 꾸준히 보게 되는 이유는 황지안 캐릭터 때문이다. 식상한 마주침이 반복되다 결국 술에 취해 일을 저지른 다음날 아침. 비명을 지르고 호들갑 떠는 패턴까지 따라갈 줄 알았더니 뭐, 눈 질끈 감았다 뜨고 일어나 회사 가더라. 폐경이행증 진단을 받았으면 자신이 가여워 미치겠다고 몸부림칠 법도 한데 예상 밖으로 침착하다. 지안은 어째서 그렇게 의연할 수 있을까? 흔치 않은 타입의 여주인공이라 도리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지만 가족과 떨어져 15년간 워커홀릭으로, 가끔 생떼를 피워도 역성들어줄 애인 없이, 입이 거친 싱글맘 친구와 함께 마흔 가까이 나이를 먹었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혼자 감당하고 선택하는 순간을 수도 없이 반복했을 테니까.

차기 사장 자리가 내정되고 맞선남 은성(박건형)에게 슬슬 마음을 열 무렵, 예상치 못한 임신을 알게 된 뒤도 그렇다. 인공임신중절을 암묵적으로 시술하는 곳에서 상담까지 받은 상황. 결정을 미룬 지안은 태강이나 은성의 존재를 배제한 채, 노트에 ‘아이를 낳지 않을 이유/낳을 이유’를 담담하게 적어 내려간다. 이 장면에 전에 없던 모성이 갑자기 생겨나 흐느끼는 신파는 없다. 대개의 드라마들이 임신을 유지할 것인지 말 것인지 고민하는 시간을 삭제하거나 모성과 죄책감으로 덧씌우던 걸 생각하면, 지안이 자기와 태아 사이에서 고민하던 시간들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

지안의 임신을 알게 된 주변 반응도 흥미롭다. 싱글맘 친구는 “뗄지 말지 얼른 결정해!” 등 파괴적인 말을 내뱉기도, 모성애의 경험을 전해주기도 한다. 산부인과 의사 은성은 낙태법 폐지 토론장서 평정심을 잃었다. “뱃속의 아이 입장이라면 어쩌시겠어요? ‘엄마의 행복을 위해 기꺼이 죽어드리지요’ 하시겠어요? 낙태로 인생이 행복해진다는 부모한테서 치사하게 목숨 구걸하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지안을 다시 만난 은성은 “수술이 하고 싶으면 몰래 해버리든가. 내가 산부인과 의사인 걸 알면서 왜 나한테 말을 한 거야”라고 참담한 심정을 털어놓는다. 애써 별것 아닌 종기 취급을 하거나 반대로 형체도 갖추기 전 기어코 인격부터 부여하려는, 태아를 두고 빚어지는 아이러니들.

지안은 결국 아이를 낳기로 결정한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목적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산!’이라고 단정하고 싶진 않다. 이런저런 참견과 캠페인과 국가 단위로 떠안기는 죄책감에 눈이 흐리고 겁에 질려 임신이나 출산 등은 생각조차 이어가지 못하던 나같은 사람은 지안이 밟아가던 과정에 의미를 두듯, 각자 형편과 나이와 경험에 따라 답은 다를 테니까. 모쪼록 어떤 결정을 하든 별수 없이 떠밀리든 간에, 저 아이러니 사이에서 질식하지 않기를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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