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여성감독 도리스 위시먼이 아흔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내 기억이 옳다면 한국에서 그녀의 죽음을 따로 애도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녀는 임종 직전에도 신작을 찍던 열혈 감독이다. 그런데 왜 그녀는 한국에서 무명으로 남았을까. 그녀에게 붙은 별명을 들어보면 이유를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여자 에드 우드’로 불렸다(내가 보기엔 러스 메이어에 더 가깝다). 어떤 영화를 만들었는지 대충 짐작이 가지 않나.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가슴을 지닌 여자와 이상한 성기를 가진 남자가 등장하고, 저렴한 비용으로 빨리 찍은 장면이 넘쳐흐르며, 유명한 배우는 눈을 비비고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그녀가 말년에 연출한 영화 중 한편의 제목은, 입에 담기에도 민망한 <딜도 헤븐>이다. 캠피한 맛에 환장한 사람이 아니라면 위시먼의 영화를 찾아볼 일이 없다. 여기서 위시먼 영화의 중요성을 외치더라도 그녀의 영화가 재평가될 가능성 또한 희박해 보인다. 다만 끝까지 인디로 남은 그녀보다 본능에 충실한 감독은 없었던 것 같다. 비록 싸구려 영화를 만들었지만 그녀는 어떤 감독보다 솔직하고 대담한 자세로 영화에 임했다. 그녀가 ‘앤서니 브룩스’, ‘루이스 실버맨’ 등의 남자 이름으로 대신 활동해야 했던 사연도 아마 그러할 것이다. 히피 문화가 흥하고 사라지는 시기에 집중적으로 영화를 만든 그녀는 히피 정신의 한 부분을 영화에 쏟아부었다. 성과 자연과 낙관이 지배하는 그녀의 영화를 보노라면 환각에 빠질 것 같다. 감독과 제작을 겸한 그녀는 오직 자의에 의해 자기만의 영화를 만들어나갔다.
위시먼의 영화 가운데 <달나라 나체촌>은 볼 때마다 즐거움을 준다. 단독 연출로선 데뷔작이며 그녀의 ‘나체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데뷔 초기 위시먼은 나체를 주제로 한 작품을 집중적으로 발표해 자신이 꿈꾼 낙원의 모습을 투영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공원에 둘러앉아 말씀에 몰입하는 <어느 나체주의자의 일기>의 도입부를 보면 그녀의 꿈이 꼭 헛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달나라 나체촌>은 크게 보아 SF영화로 묶일 수 있으나, 장르 팬들은 어림없는 소리라고 항변할 것 같다. 비과학적이고 비현실적인 면이 심각하다는 점에서 아무리 비판해도 모자라지 않다. 그래도 <달나라 나체촌>은 현대 SF영화가 잃어버린 부분을 되돌아보게 한다. 프리츠 랑의 <달의 여인> 같은 초기 SF영화부터 <달의 고양이족 여인들> 같은 1950년대 B급 SF영화까지 인간은 우주에서 낭만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SF영화로선 인간이 달에 착륙한 게 꼭 반길 일만은 아니었다. 유산으로 손수(!) 우주선을 제작한 과학자가 달나라에 도착해 나체족과 그들을 이끄는 여왕과 만난다는 이야기인 <달나라 나체족>은 위시먼판 ‘복락원’이다. 한심한 발상일지 모르지만 민주적으로 평화롭고 자유로운 사회를 꾸리는 그들의 모습은 근본적으로 아름답다. 공포영화와 결합해 외계인과 죽도록 싸우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다수의 현대 SF영화보다는 위시먼의 사이비 SF영화가 더 가치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최소한 위시먼은 영화로 꿈꿀 줄 알았으며 영화라면 응당 그래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