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해결은 플롯 그 자체에 의해 이루어져야지 <메데이아>나 <일리아스>에서처럼 ‘기계장치’에 의존해서는 안됨이 명백하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에 나오는 말이다. 이 구절에서 ‘기계장치’(mechane)라는 말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추측이 무성하지만, 일반적으로 ‘아에오레마’(aeorema)라 불렸던 고대의 기중기를 가리킨다고 보는 게 정설이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이 장치는 주로 무대 위에 신을 등장시키는 데에 사용되곤 했다.
그리스 연극의 특수장치
오늘날의 영화나 연극 못지않게 그리스의 연극에도 다양한 특수장치가 사용됐다. 대표적인 것이 ‘메카네’, 즉 인간을 하늘로 끌어올리거나 신을 무대로 끌어내리는 데 사용된 기중기다. 가령 아리스토텔레스가 언급한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를 생각해보자. 남편의 배신에 대한 보복으로 제 자식들까지 살해한 메데이아. 남편 이아손이 뒤늦게 이를 알고 그녀를 죽이려 달려드나, 이미 그녀는 태양의 신 헬리오스의 마차를 타고 하늘을 날고 있다.
이렇게 사건의 해결을 신의 개입에 맡기는 것을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라 불렀다. ‘아포 메카네스 데오스’라는 그리스 원어의 라틴어 번역이다. 과거처럼 신이 등장하지는 않더라도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여전히 존재한다. 사건의 해결을 ‘우연’에 맡기는 것은 차라리 쪽대본을 사용하는 아침 연속극의 일상에 속한다. 오늘날 신은 기계장치 없이 교통사고나 기억상실의 형태로 내려온다.
신을 내리는 데에 사용된 또 다른 장치로 ‘테올로게이온’(theologeion)이 있다. ‘신(theos)이 말하는(logos) 장소’라는 뜻을 가진 이 장치는 극장의 지붕 위로 솟아오른 가설무대라 할 수 있는데, 그 생김새가 오늘날 야외공연 시 촬영을 위해 무대 옆에 세우는 높은 단상을 닮았다. 아리스토텔레스야 기계장치의 무분별한 사용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 장치들이 무대를 2D에서 3D로 확장시킴으로써 관객의 눈을 시원하게 해주었을 것 같기는 하다.
한편, 커다란 널빤지의 네 귀퉁이에 바퀴를 달아놓은 ‘에키클레마’(ekkyklema)라는 장치도 종종 사용되었다. 이는 흔히 실내에서 벌어진 사건을 바깥의 관객에게 보여주기 위한 장치라 설명된다. 그리스 비극에서 잔혹한 장면은 전령의 메시지를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되거나, 관객이 보지 못하도록 무대 뒤에 세워진 건물의 실내에서 연출되곤 했다. 가령 사람을 칼로 찌르는 잔혹한 장면이 관객에게 심리적으로 극도의 충격을 주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학자들에 따르면 아리스토텔레스가 비극의 효과로 든 ‘연민’(eleos)과 ‘공포’(phobia)의 효과는 현대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렬한 것이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연민’은 타인에 대한 동정을 넘어 그에게 닥친 일이 언제라도 내게 닥칠 수 있다는 강렬한 느낌이었고, 그와 짝을 이룬 ‘공포’ 역시 두려움의 수준을 넘어 차라리 경악의 상태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이로 보아 고대인들은 온갖 잔혹함에 익숙한 우리보다 감성이 훨씬 여렸음에 틀림없다.
그 여린 이들에게 살인장면을 직접 보여준다면 아마도 쇼크를 받아 다들 임상의학적으로 위험한 상태에 빠졌을 것이다. 그 때문에 그리스의 시인들은 살해는 실내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해두되 그 시체만을 에키클레마에 실어 무대 위로 나름으로써 살인의 발생을 밖의 관객에게 간접적으로 알리려 했던 것이다. 고대인들에게 가상과 현실의 경계는 그렇게 뚜렷하지 않았다. 온갖 잔혹함에 익숙한 우리도 실제의 살인을 목격한다면 쇼크를 받을 것이다.
역시 그리스의 비극에 사용된 ‘페리악토이’(periaktoi)는 프리즘 모양의 삼각기둥을 여러 개 일렬로 늘어놓은 것이다. 각각의 삼각기둥은 제자리에서 회전하게 되어 있고, 기둥들의 각 면에는 각각 다른 그림이 그려져 있어, 기둥들이 회전하면서 세개의 다른 배경을 만들어낸다. 오늘날에도 길거리의 광고탑에 종종 이 방법을 사용한다. 이 장치를 사용하면 가령 도시의 풍경을 순식간에 전원으로 바꿔놓는 등 장면의 빠른 전환을 만들어낼 수 있다.
비록 고전기의 비극에는 사용되지 않았지만, 헬레니즘 시대에는 ‘천둥기계’가 사용되기도 했다. 알렉산드리아의 헤론이 발명했다고 하는데, 극에서 신들이 등장하거나 퇴장할 때 우레와 같은 소리를 내는 데 사용됐다고 한다. 원리는 간단하다. 커다란 돌덩이들을 거대한 원통형 구조물 속으로 떨어뜨리면 그 소리가 구조물 안에서 공명을 일으켜 크게 울리게 된다. 이로써 신의 출몰에 동반되는 천둥소리가 만들어진다. 오늘날의 효과음인 셈이다.
비극기계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 메카네일 것이다. 천둥기계가 효과음, 페리악토이가 무대배경, 에키클레마가 연출기법에 불과하다면 메카네는 극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플롯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특별히 이 장치를 언급하며 이 장치를 오직 “인간이 알지 못하는 일을 말하거나, 혹은 앞으로 닥칠 사건을 예언하는 데”에만 사용하라고
스펙터클로서의 데우스 엑스 마키나
‘사건의 해결이 플롯의 결과로 나타나야 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에는 인간사를 바라보는 ‘내재적’ 관점이 깔려 있다. 즉 인간사는 신의 역사(役事)가 아니라, 인간의 업보, 즉 인간들 자신이 한 행위의 결과라는 관점이 깔려 있다. 이른바 ‘운명’의 행로는 신들의 자의적 의지의 결과가 아니라, 인간들의 상호작용의 벡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당시 그리스인들의 의식 속에서 한때 신들이 차지하던 자리는 이렇게 점점 사라져가고 있었다.
하필 그런 시기에 그리스의 시인들은 왜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남발하기 시작했을까? 내가 품어온 오랜 질문은 이것이다. 소포클레스-아이스킬로스-에우리피데스로 이어지는 비극 시인의 계보 속에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외려 늦은 시기에, 말하자면 에우리피데스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나타난다. 극작술이 시간이 흐를수록 발전하게 마련이라면 이를 그저 자신이 펼쳐놓은 갈등을 미처 수습하지 못하는 시인의 무능으로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당시에도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남발은 비웃음의 대상이었다. 가령 희극 작가 아리스토파네스는 <여인들과 시인>에서 에우리피데스를 메카네에 달아 무대에 내려놓았다. 물론 에우리피데스에 이르러 배역의 수도 늘어나고, 그들 사이의 갈등도 더 복잡해지긴 했다. 하지만 3대 비극시인으로 꼽히는 그라면 헬리오스를 부르지 않고도 메데이아를 구해낼 수 있었을 것이다. 비웃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메카네를 사용했다면 거기엔 또 다른 이유가 있었을 거다.
주관적 추측이지만 에우리피데스 이후에 시인들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남발한 것은 혹시 테크놀로지를 동원한 연출의 시각효과 때문이 아니었을까? 가령 헬리오스의 마차에 실려 허공을 떠도는 메데이아의 모습을 상상해보라. 당시의 관객에게 이는 아마도 시각적 장관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물론 이 특수효과(?)가 자칫 플롯 자체를 망칠 수도 있다는 점. 오늘날에도 특수효과 때문에 플롯을 희생한 영화를 종종 본다. 당시라고 달랐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