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 격, 격하게 너희들을 아끼고 있어. 맞아, 블랙홀처럼 빨려들어가, 끝이 안 보여, 라는 새 노래 <Electric Shock>의 노래 가사에 맞춰 f(x)에 전하고 싶다. 함수 소녀들아, 너희들이 데뷔할 때부터 쭈욱, 격하지만 격조있게 아껴왔단다.
f(x)에 마음을 뺏긴 이유는 그들만의 확고한 스타일을 처음부터 강렬하게 눈치챘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에서 f(x)를 처음 보았을 때가 생각난다. 내 머릿속에는 수많은 물음표가 어지럽게 떠 있었다. 저 뜬금없는 가사들은 다 뭐란 말인가. 저렇게 아스트랄한 가사를 저토록 진지하게 발음하는,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소녀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외계에서 캐스팅한 소녀들일까. 나는 모든 물음표를 거두기로 했다. 물음은 의미없었다. f(x)가 내뱉는 말은 외계어였고, 독해가 불가능한, 운율로서의 말이었다. 어떤 불일치가 소녀들을 아름답게 만들었고, 잦은 과잉이 현기증을 일으키게 했다.
f(x) 스타일은 <NU 예삐오(NU ABO)>에서 완성된 게 아닌가 싶다. ‘새로운 혈액형’이라는 뜻의 (아냐, 의미가 뭐 중요해! 그냥 예뻐요로 들리는걸!) 제목도 낯설지만 ‘나 어떡해요 언니?’로 시작하는 가사, 꿍디꿍디라는 단어, ‘딱 세번 싸워보기, 헤어질 때 인사 않기’ 같은 사랑법을 듣고 있노라면, 그래, 내가 졌다, 네 맘대로 아무렇게나 하고 싶은 말을 해,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가끔은 이런 가사를 f(x)에게 선사한 유영진씨가 미울 때도 있지만 f(x)만의 스타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상할 바에야 어쭙잖게 유치한 것보다 이렇게 밑도 끝도 없이 뜬금없는 게 더 낫다. 인정!
신곡 <Electric Shock>에서도 가사는 별 의미가 없다. 의미를 해석해보려고 하다가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하하, f(x) 팬들이라면 이런 건 아무렇지도 않죠. 한두번 겪는 일도 아니잖아요. ‘격변하는 세계, 그 속에 날 지켜줘’라든가 ‘대체 끝이 없는 게이지’ 같은 문장들을 발음하는, 소녀들은 여전히 예쁘다.
새 앨범을 듣고 좀 갑갑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피로감이 쌓인 걸까. 스타일이라는 건, 말하자면 벽지 같은 거다. 무늬를 정하고 색을 정하고 패턴을 결정하는 거다. 예술가들은 모두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 공을 들이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친다. 벽지를 정하고 나면 그다음에야 비로소 거기에 어떤 가구가 어울릴지, 어떤 그림을 걸어두면 좋을지 고심하며 공간에 깊이를 더하게 된다. 평생 벽지를 고르지 못하는 예술가도 있고, 벽지만 골라놓고 가구를 집 안에 들이지 못하는 예술가도 있다. f(x)의 벽지는 매번 너무 화려해서, 벽지에 색을 너무 많이 입혀서, 도무지 어울리는 가구나 그림을 찾을 수가 없다. 제작자들이 조금은 밋밋한 벽지를 만들어서 이 예쁜 소녀들이 더 아름답게, 더 잘 보일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