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9월28일까지 장소: 플라토(옛 로댕갤러리) 문의: 02-2014-6552
사랑은 넘쳐도 부족해도 곤란하다. 작업을 볼 때 예술가의 생애에 아예 무감한 것도, 너무 많이 아는 것도 독이 된다. 하지만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1957~96)는 예외로 하고 싶다. 누군가는 보통 사람과 다른 행성에 있는 것이 허락된다면, 그래서 그의 사랑과 죽음이 통속이 아닌 다른 어떤 것이 된다면, 바로 이 작가가 아닐까 싶다. 쿠바 출신의 유색인종이자 동성애자로 살다 39살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한 작가는 그보다 5년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동성연인 로스 레이콕을 향한 사랑과 애도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애인이 세상을 떠난 1991년에 시작된 몇편의 작업에서도 느껴지듯 삶과 예술이 그에게는 한쌍의 조각배와 같았다. 미묘한 떨림을 가진 채 둥둥 물위를 계속 항해하며 만들어가는 두개의 포물선처럼.
아시아에서 열리는 첫 회고전인 <Double>은 수많은 작가들에게 영감의 대상이 되고 있는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의 세계를 꼼꼼하게 담아냈다. 한시적이고 유약한 사물들인 형광등, 거울, 사탕 등이 전시장에 보인다. 그가 붙인 <무제>라는 제목 속에 숨겨진 목소리를 꺼내보는 것은 관람자 개인의 몫이다. 전시장에서는 두개의 시계를 만나게 된다. 똑같은 순간에 건전지를 넣은 아날로그시계는 처음에는 쌍둥이처럼 동일한 분초를 가리키다가 점점 각자의 속도로 다른 행성을 가리킨다. 그러다 약이 다하면 정지한다. 작품 제목은 <무제>, 작가는 이 두쌍의 시계가 전시장이 아닌 일상적인 장소 곳곳에 슬며시 존재하기를 바랐다.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는 사랑하는 이들이 어떻게 함께 시작하고 달라지는지, 그러다 또 어떤 소멸을 맞이하는지 기다리고 관찰했다. 누군가 지난밤을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빈 침대 사진(<무제>). 두개의 베개가 지금은 사라진 한쌍의 커플이 누워 있던 ‘흔적’을 기린다. 시적이고 은유적이었으나, 작가는 미국의 반게이법 제정에 대한 비난을 멈추지 않았다. 플라토 전시장 외에 서울 시내 여섯곳에 설치된 거리 빌보드(옥외 광고판)에서 텅 빈 2인용 침대 사진을 볼 수 있다. 이 텅 빈 침대의 사진을 기억한다면 우리도 그 순간 누군가를 잠시나마 추모하는 일에 동참하게 될지 모른다. 나는 무엇과 어떻게 동거하며 어떤 ‘쌍’을 이루고 있는지 되묻게 되는 <Double>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