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간: 7월31일까지 장소: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문의: 1577-3363
지난겨울, 3D로 변환해 재개봉한 <라이온 킹>을 보고 깜짝 놀랐다. 영화는 그대로인데 그때 그 감동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영화에 숨겨진 미국 제국주의 탓이다. 그나마 영화음악이 애정의 끈을 놓지 않게 만들었지만 불편했다. 어린 시절 재밌게 읽은 동화의 ‘비현실성’을 깨달은 것처럼. 권선징악의 세계로 일관하는 동화들 말이다.
그런 면에서 뮤지컬 <위키드>는 어른들의 동화다. 100년 넘게 사랑받아온 고전동화의 선악 이분법을 통쾌하게 뒤집는다.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사악한 서쪽 마녀(엘파바)가 사실은 정의감에 불타는 모범생이며, 동쪽의 착한 마녀(글린다)는 금발의 허영덩어리였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서쪽 마녀가 왜 사악한지 혹은 왜 사악하게 되었는지, 그 실마리를 풀며 <위키드>는 오즈의 역사를 다시 쓴다.
초록색 피부로 극심한 콤플렉스를 가지고 태어난 엘파바. 당연하게도 세상 사람들의 멸시와 경멸의 대상이 된다. 조금은 퉁명스럽고 시니컬한 성격이지만 심성이 따뜻한 엘파바는 자신의 남다른 마법 능력을 좋지 않은 목적으로 쓰려는 어둠의 세력에 저항한다. 거대 권력은 엘파바에게 ‘사악한 마녀’라는 꼬리표를 덮어씌우며 말 그대로 마녀사냥에 나선다. 선악의 세계에 의심의 물을 섞은 뮤지컬은 어른이 된 우리에게 묻는다. 지금 당신의 선악 구분은 타당한 것인가. 나와는 ‘다른’ 존재를 인정하고 수용하고 있는가.
그러나 뮤지컬은 뮤지컬이어야 한다. 결국 쇼는 쇼여야 한다는 말이다. 뮤지컬은 웃음으로 묵직한 주제의식을 상쇄시킨다. 덕분에 더없이 밝고 경쾌하다. 거대한 드래곤 모형과 오즈의 지도로 가득한 무대. 마법의 세계에 발을 들인 느낌이다. 화려한 무대의상과 무대 전환까지 더해져 볼거리가 가득하다. 하이라이트는 1부 마지막. 엘파바가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겠다고 선언하며 부르는 <Defying Gravity>. “나 이제부터 중력에 맞설 거야. 아무도 날 끌어내릴 수 없어”라고 외치며 빗자루를 타고 날아오르는 장면은 여러 감정을 깨닫게 한다. 1부가 엘파바와 글린다의 성장에 초점을 두었다면, 2부에서는 양철나무꾼, 겁 많은 사자, 허수아비의 탄생비화와 도로시가 왜 오즈에 오게 되었는지 그 신발을 어떻게 얻었고 그 신발이 누구 것인지까지 모든 게 설명된다.
뮤지컬 <위키드>는 지나친 수다가 화를 부른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다보니 주인공인 엘파바의 캐릭터가 축약되고, 이야기구조는 산만해졌다. 당연히 <위키드>의 매력적인 이야기의 힘이 약해질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