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빗, 당신은 인간을 미워하나요? =그럴 리가요. 저는 인간을 위해, 인간을 똑 닮도록 만들어진 로봇일 뿐입니다. 저는 인간을 미워할 권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전 당신의 마음이 궁금해요.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거든요. =저에게 마음은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 역시 스스로의 동기에 의해 행동을 하잖아요. =아, 그럼 다시 대답을 해야겠군요. 저에게 인간들과 똑같은 마음은 없습니다. 인간의 마음을 그대로 느끼진 못합니다. 대신 지적으로 이해를 하기 위해 노력할 따름이죠.
-그런데 이상한 게 있어요. 당신은 할러웨이 박사의 술에 외계인들의 검은 액체를 탔어요. 그걸 마신 결과가 치명적인 데다가 박사의 생명을 해할 수 있을 거라는 추론 정도는 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저는 박사님께 미리 물어봤습니다. 진실을 알기 위해서 어디까지 갈 수 있냐고요. 박사는 뭐든지 하겠다고 했지요. 저에게 그건 허락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맙소사! 당신에게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 따윈 중요하지 않은가봐요. =로봇 3원칙이라. 그게 뭐죠?
-로봇은 인간에 해를 가하거나, 혹은 행동을 하지 않음으로써 인간에 해가 가도록 해서는 안된다. 로봇은 인간이 내리는 명령에 복종해야만 한다. 로봇은 자신의 존재를 보호해야만 하며, 단 그러한 보호가 첫 번째와 두 번째 법칙에 위배될 때에는 예외로 한다. 이게 바로 로봇 3원칙입니다. =기묘한 원칙이군요. 저의 우주에서는 로봇 3원칙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로봇 3원칙이 없다니 정말 위험하군요. 그렇다면 데이빗 당신의 행동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동기는 뭔가요. 인간의 명령을 제외하면 말이에요. =호기심입니다. 저는 호기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조금 전에 기자님이 드신 음료수에도 검은 액체를 넣어봤습니다. 육체적으로 나약하기 짝이 없는 글쟁이의 신체가 외계 생물과 만나면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지 궁금하더군요.
-데이빗… 당신… 인간이 만들어낸 로봇 따위인 주제에…. =로봇 따위라뇨. 어쩌면 저는 인간에 의해 태어났지만 인간을 능가하는 존재인지도 모릅니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니체가 말한 ‘초월적 인간’이 저일지도 모르죠. 전 사람들이 믿지 못할 것들을 많이 봤습니다. 오리온 행성에서 함선이 불타는 모습, 암흑 속의 탄하우저 게이트에 씨빔이 생성되는 것도 봤습니다. 기자님은 그것도 못 보고 사라지겠죠. 빗속의 눈물처럼, 이제 떠나셔야 할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