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댄스영화제의 개·폐막 행사가 열리는 에콜시네마 앞. 이 극장은 파크시티 고등학교 대강당이다.
전주영화제 유운성 프로그래머가 해임되었다. 영화제쪽에서는 적법한 조치였다고 하고, 반대로 유운성씨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다. 당연히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유운성씨의 입장을 대변하는 글이 될 것이 뻔하기에, 한쪽의 입장을 옹호하는 글보다는 그냥 이런 사태가 다시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 다소 이상적인 아이디어를 툭 던져본다.
해외의 많은 유명한 영화제도 파고들어가보면 구린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돈줄이 되는 기관들의 눈치를 보는 것부터, 내부 인사들간의 치열한 파벌싸움, 중요한 자리에 친인척을 앉히는 마피아식 운영, 심지어 한 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은 자신의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작품을 관련 회사를 통해 배급하게 하고 돈을 버는 작태까지 벌였단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설마 그럴 리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양한 소문이 넘치는 곳이 영화제다. 그러다보니 영화제의 관련 인사가 해임되고 또 새로운 사람이 그 자리를 채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나라 영화제의 해임 사유는 참 소박하다. 기껏해야 시장 이름 까먹고, 지역 언론에 입바른 소리 좀 하는 정도니까. 어차피 지금처럼 영화제 재원의 대부분을 지방자치단체에서 지원받는 상황에선 별다른 대책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고 선거에서 영화제를 진짜 영화제로만 인식하는 자치단체장이 당선되는 행운을 계속 바라는 것도 무리이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지금까지 많은 해외영화제를 다니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영화제 얘기를 하고 싶다. 몇년 전 제작투자한 영화가 그 영화제의 경쟁부문에 초청받아 감독, PD와 함께 가게 되었다. 세계적인 영화제인데 설마 초청게스트를 어느 정도는 신경 써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완벽한 착각이었다. 일단 감독에게조차 숙소가 나오지 않는다. 그냥 1천달러를 현금으로 주고 그걸로 숙박비로 쓰란다. 무대 인사를 하러 가는데도 알아서 극장으로 오라고 한다. 상영관도 진짜 극장은 한 군데뿐이고 고등학교 강당, 마을 도서관, 심지어 마을 회관에서까지 영화를 상영한다. 이동수단은 동네를 한 바퀴 도는 셔틀버스나 도보. 물론 택시를 부를 수도 있지만 그게 더 시간이 걸린다. 이 정도 되면 영화제의 게스트와 관객의 원성이 하늘을 찌를 만한데, 이상한 건 아무도 그런 사람이 없다는 거다. 관객은 상영관마다 길게 줄서서 순서를 기다리고 배가 고프면 간단한 요깃거리를 사먹는다. 그 줄에는 유명한 감독도 배우도 평론가도 다 같이 서 있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즐긴다, 모두가 함께. 이상이 미국 유타주의 산골리조트에서 열리는 모 영화제의 참가 소감이다.
그렇다. 영화제는 결국 돈이 있어야 치를 수 있다. 게스트도 관객도 부족한 서비스를 감내한다면 비용을 좀더 절약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돈을 주는 사람들에게 조금은 당당하지 않을까? 아니면 해마다 수조원의 이익을 내는 자칭 글로벌한 국내 기업들이 푼돈 몇 억원씩 영화제에 기부해주길 바라는 건 불가능한 일인가? 역시 나도 또렷한 해결책은 모르겠다. 그래서 이번 사태가 더 슬프다.
지난 2004년에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김홍준 집행위원장이 해임됐다. 당시 조직위원회에서 밝힌 해임사유는 “매끄럽지 못한 행사 운영,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경제효과, 김 위원장이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장을 함께 맡고 있어 영화제 업무에 집중도가 떨어진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와 함께 “개막식에서 당시 홍건표 부천시장의 이름을 소개하지 않았다”는 점을 거론했다.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집행위원장의 계약서에는 비상근직이라고 명시돼 있기 때문에 겸직이 문제되지 않으며 비용 등 투자가 원활하지 않은 상황에서 온라인 시스템 등 영화제의 원활한 진행을 기대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거였다. 당시 영화계는 김홍준 위원장이 홍 시장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다는 점을 가장 명확한 해임사유로 꼽았다. 김홍준 영상원 교수는 요즘 유운성 프로그래머의 트윗을 자주 리트윗하고 있다.